본문으로 건너뛰기
2화
어머니의 쇠갈고리
1930년대~1940년대 초, 안면도 중장리
사방이 거친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 충남 태안 안면도 중장리.
1936년 겨울, 배병희는 그 갯바람 부는 언덕배기 마을에서 삼남이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마을 땅은 메마르고 척박했다.
비탈진 황토밭에는 자갈과 모래가 섞여 있었다.
비가 오면 흙물이 도랑으로 쓸려 내려갔고, 가물면 옹기처럼 굳어 괭이 날도 튕겨냈다.
벼를 부칠 논은 드물었다.
황토밭에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으나 일곱 식구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밥상 위에는 늘 헐벗은 그릇만 올랐다.
보리 낱알이 뜬 시래기죽이나 삶은 감자가 고작이었다.
흰쌀밥 한 그릇은 명절에도 구경하기 어려운 남의 일이었다.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린 것은 땅이 아니라 바다였다.
바다는 하루 두 번씩 물을 밀어내고 거두었다.
썰물이 지면 끝없는 잿빛 개펄이 드러났다.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 바닷가 오두막의 낡은 문풍지가 밤낮없이 떨었다.
물때는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한밤중이든 동틀 녘이든 물이 빠지면 바다로 달려가야 했다.
지체하면 사나운 밀물이 갯길을 삼켰다.
바다를 거르면 식구들의 끼니가 끊겼다.
어머니는 물이 빠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부엌문을 나섰다.
먼바다 하늘의 구름장을 살피는 어머니의 낯빛은 늘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어머니 손에는 언제나 닳아빠진 '조새'가 들려 있었다.
바위에 붙은 자연산 굴을 쪼아 알맹이를 발라내는 쇠갈고리였다.
대나무 손잡이는 수만 번을 쥔 탓에 손가락 모양대로 패였고, 갈고리 끝은 바위에 닳아 뭉툭했다.
어머니는 헤진 무명 버선 위로 짚신을 단단히 동여맸다.
살얼음 버석거리는 개흙을 밟으며 묵묵히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북서풍이 몰아치면 바닷가는 거대한 얼음 구덩이였다.
어머니는 차가운 바위틈에 쪼그려 앉아 쉴 새 없이 조새를 놀렸다.
쇠갈고리가 단단한 굴 껍데기를 내리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번졌다.
부서진 껍데기 조각과 차가운 짠물이 어머니의 얼굴과 옷자락으로 튀었다.
어머니의 손마디는 모진 칼바람에 터져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짠 바닷물이 스며들 때마다 생살이 타는 듯 아렸지만 어머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조새 끝에 걸려 나오는 뽀얀 굴 한 점이 자식들의 목숨이었다.
여섯 살 무렵의 배병희는 어머니 뒤를 따라 갯벌로 나선 적이 있었다.
일손을 돕겠다고 손에 작은 바가지를 쥐고 뒤를 쫓았다.
하지만 어린 걸음으로 겨울 개펄을 건너기는 어림도 없었다.
발은 차가운 흙탕물 속으로 푹푹 꺼졌고, 얼음 조각 뜬 바닷물이 버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발가락 끝이 칼로 베인 듯 에려 왔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겨우 갯바위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홱 돌아서며 쇠갈고리를 치켜들었다.
"여그가 어디라고 기어 나와!
얼른 집으로 안 들어가!"
어머니의 성난 불호령이 바람을 뚫고 날아왔다.
당장이라도 소년의 바가지를 낚아채 던질 서슬이었다.
어머니의 터진 손등에서는 붉은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언덕으로 쫓겨 올라온 소년의 눈에 비탈진 황토밭이 들어왔다.
언덕 위에서는 아버지가 굽은 허리로 괭이를 찍어 내렸다.
흙먼지 날리는 돌밭에서 아버지는 묵묵히 흙을 파헤쳤다.
두 형은 밭일에 온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기운은 장정 못지않았으나 황토밭의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했다.
형들은 틈만 나면 포구 쪽으로 내려가 뭍을 오가는 배를 기웃거렸다.
가족의 생계는 늙은 아버지 몫이었다.
낡은 무명옷 등판은 땀과 흙탕물에 절어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괭이를 내리찍을 때마다 굵은 땀방울이 마른 흙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소년은 마당 한구석에 우두커니 섰다.
갯바위에서 조새질을 하던 어머니와, 메마른 밭에서 괭이를 들던 아버지의 굽은 등판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년은 뒤란 헛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침침한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쇠스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들이 쓰다 내버려 둔 낡은 연장이었다.
네 갈래 쇠발에는 녹이 슬고 마른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굵은 참나무 자루는 소년의 키를 훌쩍 넘겼다.
배병희는 두 손으로 자루를 그러쥐었다.
차가운 쇠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소년은 제 몸집만 한 쇠스랑을 어깨에 메고 비탈진 황토밭으로 걸어 올라갔다.
밭 가장자리에는 마른 잡풀과 잔돌이 엉켜 버려진 굳은 땅이 있었다.
소년은 그곳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섰다.
소년은 쇠스랑을 들어 올려 굳은 땅을 힘껏 내리찍었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쇠발이 돌멩이에 부딪혀 튕겨 올랐다.
손목과 어깨가 저릿하도록 진동이 울렸다.
메마른 나무 자루에 쓸린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쇠스랑을 다시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온몸의 무게를 실어 흙더미 속으로 날을 깊이 찔러 넣었다.
흙덩이가 쪼개지며 마른 먼지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자루를 비틀어 흙을 뒤집고 풀뿌리를 털어냈다.
불거져 나온 돌멩이는 손으로 골라내 밭두렁 밖으로 던졌다.
손바닥 안쪽에 금세 붉은 물집이 돋았다.
쇠스랑질이 이어지자 물집이 터져 핏물이 배어나왔다.
쓰라린 생살에 모래가 달라붙었지만 소년은 자루를 놓지 않았다.
고랑이 한 뼘씩 넓어질 때마다 소년의 어깨가 가쁘게 들썩였다.
그때 등 뒤에서 흙을 밟는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괭이를 든 아버지가 밭둑 위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땀과 흙으로 얼룩진 소년의 얼굴과 피 묻은 손바닥, 삐뚤빼뚤하게 파헤쳐진 밭고랑을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린것의 만용이라 꾸짖지도, 기특하다며 등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밭둑에 세워둔 지게로 다가갔다.
지게 섶에 매어둔 바랜 무명 보퉁이를 천천히 풀었다.
그 안에서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굵은 삶은 감자 한 덩이가 나왔다.
아버지는 흙투성이 손으로 감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소년의 피 묻은 작은 손바닥 위에 그 뜨끈한 감자를 말없이 얹어주었다.
"식기 전에 먹어둬라."
낮고 투박한 한마디였다.
아버지는 거친 손바닥으로 소년의 어깨를 툭 쳐주고는 뒤돌아섰다.
제 고랑으로 걸어가 묵묵히 괭이를 치켜올렸다.
소년은 두 손으로 감자를 감싸 쥐었다.
껍질 틈으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이 곱은 손가락과 쓰라린 상처를 데워주었다.
언덕 아래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잿빛 갯바위에서 어머니는 쉼 없이 쇠갈고리로 굴 껍데기를 쪼아내고 있었다.
눈앞의 밭두렁에서는 아버지가 묵묵히 굳은 땅을 일구고 있었다.
남의 손을 빌려 살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다.
제 손으로 흙을 파헤치고 굴을 캐지 않으면, 식구들 입에 밥 한 술 들어가지 못했다.
소년은 뜨거운 감자를 껍질째 베어 물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텁텁한 단맛 속에서, 소년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가난의 무게를 온몸으로 삼켜냈다.
그날 이후 소년 배병희의 손에서는 쇠스랑이 떠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골목에서 자치기를 하거나 갯가로 달려갈 때도 소년은 헛간으로 가 연장을 챙겼다.
손바닥 터진 자리에는 누런 굳은살이 단단히 박였다.
쇠스랑 자루도 손에 익어 어른 못지않게 고랑을 반듯하게 팠다.
말수는 적었지만 소년의 손끝이 지나간 자리는 늘 빈틈없이 단정했다.
또래들의 손에 연필이 쥐여 있을 때, 소년의 손에는 식구들의 끼니를 파낼 묵직한 쇠스랑이 쥐여 있었다.
0:00
9:09
10
10
1.0×
재생 속도
타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