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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겨울 갯벌의 말뚝
1960년대 후반, 안면도 중장리 앞바다
탈곡패를 꾸리기 전의 일이었다.
늦가을 타작마당의 흙먼지가 가라앉자 안면도 들판에 서릿발이 하얗게 섰다.
농한기가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에 모여 긴 겨울을 났다.
화롯불에 언 손을 쬐며 짚신을 삼거나 새끼를 꼬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사꾼에게 겨울은 한 해 농사를 털어내고 쉬어가는 때였다.
하지만 배병희는 손을 놓고 쉴 수 없었다.
식구들의 끼니를 잇고 다가올 봄 농사 밑천을 마련하려면 쉴 틈이 없었다.
땅을 넓히고 농기계를 장만해 번듯하게 자리 잡으려면 겨울에도 벌이가 있어야 했다.
배병희는 빈 들판 너머 중장리 앞바다로 눈을 돌렸다.
안면도 남쪽 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유난히 컸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끝 모를 잿빛 개흙이 아득하게 드러났다.
그 무렵 포구 어귀에 자리한 낡은 김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전 주인은 불어난 빚과 거친 바닷일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털고 뭍으로 떠났다.
바닷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은 덜컹거렸고, 김을 뜨던 나무틀과 건조장 덕장은 삭아비틀어진 채 뒹굴었다.
"배 서방, 농사짓던 사람이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어쩌려고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이 혀를 차며 말렸다.
"겨울 갯바람은 살갗도 베어내는 법이여.
얼어붙은 뻘밭에 섣불리 손댔다간 밑천만 다 날린다네."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배병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알뜰히 모아둔 쌈짓돈을 털어 공장을 인수했다.
남들이 따 온 김을 사다 말리기만 해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갯벌 한가운데에 직접 말뚝을 박아 지주식(支柱式) 김밭을 일구어야 했다.
젊은 가장이 내린 옹골찬 결단이었다.
지주식 김 양식은 거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거센 서해 조류와 파도를 버텨낼 단단한 목재가 필요했다.
배병희는 가을부터 톱과 도끼를 둘러메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바닷물에 쉬 삭지 않고 물살을 견디는 참나무를 골라 베어 넘겼다.
단단한 밑동을 찍어 넘길 때마다 얼어붙은 뺨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쓰러진 참나무를 지게에 져 나르고, 낫으로 껍질을 벗겨 말뚝 끝을 뾰족하게 깎았다.
옹이진 나무를 다듬느라 손바닥 굳은살 사이로 생채기가 번졌다.
대나무 밭에서 베어 온 대나무도 손질해야 했다.
칼로 대를 쪼개어 가느다란 살을 만들고, 짚과 노끈을 엮어 김 포자가 달라붙을 발을 짰다.
쪼갠 대나무 살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가락 끝이 베여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묵묵히 발을 엮어 나갔다.
가을에 설치한 김발은 겨울에도 손을 봐야 했다.
진짜 고된 일은 갯벌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바다 물때는 사람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사위가 칠흑처럼 어두운 한밤중이나 동트기 전 새벽에도 물이 빠지면 갯벌로 나서야 했다.
살얼음이 서걱거리는 갯벌로 발을 디뎠다.
고무장화를 신었지만 뼛속까지 시린 찬 개흙물이 금세 파고들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개흙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을 억세게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힘을 다 써야 했다.
지게에 실린 참나무 말뚝과 김발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작대기로 뻘을 짚어가며 겨우겨우 균형을 잡았다.
바다 너머에서 몰아치는 북서풍 칼바람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귀가 얼어붙어 감각이 없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얼음 조각을 삼킨 듯 목구멍이 아렸다.
배병희는 뻘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자리를 잡았다.
묵직한 나무 메를 양손으로 번쩍 치켜올렸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참나무 말뚝이 뻘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튀어 오른 찬 개흙물이 이마와 눈가에 닿자마자 얼어붙었다.
말뚝을 박는 것보다 더 까다롭고 중요한 것은 김발의 높낮이였다.
김은 바닷물에 마냥 잠겨 있어서도 안 되고, 햇볕에 마냥 드러나서도 안 되었다.
김발의 수평과 높이를 얼마나 정밀하게 맞추느냐에 한 해 결실이 걸려 있었다.
밀물이 들면 발이 물속에 잠겨 바다의 거름기를 빨아들이고, 썰물이 지면 물 밖으로 온전히 드러나 겨울 햇볕과 바닷바람을 쐬어야 했다.
높이가 너무 낮으면 늘 물에 잠겨 파래 같은 잡풀이 끼어 썩어버렸다.
너무 높으면 얼어 터져 포자가 말라죽었다.
배병희는 수면의 높낮이와 갯골의 물길을 날마다 눈으로 가늠했다.
손으로 물살을 느끼며 김발을 묶었다.
"조금만 더 높여 묶어라.
썰물 때 햇볕을 반나절은 쬐어야 잡풀이 마르고 김 결이 고와진다."
함께 들어간 일꾼들이 추위에 손을 떨며 대충 매려 할 때마다 그는 깐깐하게 바로잡았다.
한 치의 오차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얼음물에 젖은 면장갑은 금세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얼었다.
손마디가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짠물에 닿자 쓰라릴 겨를도 없이 감각마저 얼어붙었다.
저 멀리서 밀물이 밀려오는 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들려왔다.
밀물이 차오르기 전에 배병희는 마지막 김발 매듭을 조이고 뻘밭을 빠져나왔다.
자정이 훌쩍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말 한마디 건넬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소금기와 뻘물로 절어 얼어붙은 옷자락이 걸을 때마다 버석거렸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부엌 문틈으로 뽀얀 김이 새어 나왔다.
아내가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험한 몰골을 보고도 놀라거나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말없이 다가와 꽁꽁 얼어붙은 장갑부터 조심스레 벗겨냈다.
"손부터 녹이세요."
아내는 따뜻한 물을 대야에 담아 마루 밑에 내려놓았다.
굳었던 손마디가 풀리며 살이 에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배병희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큼직한 뚝배기가 밥상 위에 올랐다.
가마솥에서 푹 고아낸 미꾸라지 손칼국수였다.
배병희가 가을 타작 끝 무렵 논둑 도랑에서 잡아 올렸던 미꾸라지였다.
아내는 미꾸라지를 뼈째 푹 삶아 체에 곱게 거르고, 된장과 고추장으로 칼칼한 장국을 잡은 뒤 홍두깨로 밀어 썬 손칼국수 면을 넉넉히 털어 넣었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얼어붙었던 속이 따뜻하게 풀렸다.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넘길 때마다 굳었던 몸에 피가 다시 도는 듯했다.
아내는 그저 밥상 맞은편에 단정히 앉아 남편이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단한 하루를 묻지도, 바다의 추위를 탓하지도 않는 깊고 담담한 침묵이었다.
겨울이 깊어질 무렵, 매서운 동지섣달 북풍이 불어 갯벌을 꽁꽁 얼렸다.
썰물에 맞춰 다시 바다로 나간 배병희의 눈앞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참나무 말뚝들이 서 있었다.
혹독한 조류를 견뎌낸 대나무 발들이 수평을 이룬 채 팽팽하게 갯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회색빛 갯벌 위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햇살을 받은 대나무 살 위로 짙은 묵빛이 어렸다.
매서운 칼바람과 얼음 같은 바닷물을 온몸으로 이겨낸 대나무 발 위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푸른 생김이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었다.
손끝으로 가만히 만져보았다.
보드라우면서도 차진 김의 감촉 사이로 깊은 바다 냄새가 묻어났다.
파래 한 올 섞이지 않은 최상품 김이었다.
찬 뻘물 속에서 밤을 새우며 말없이 박아 넣은 말뚝이 마침내 바다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배병희는 거칠게 부르튼 손으로 김발의 모서리를 쓸어내렸다.
혹독한 겨울 바다 위로 검푸른 황금빛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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