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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가마솥에 넘친 소금
1970년대 초, 안면도 갯가
바다를 막아 일군 삼천 평 논에서 첫 곡식을 거뒀지만, 소금기가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었다.
물길을 내어 짠물을 빼내려 애썼지만, 갯바닥 흙은 소금기를 쉽게 뱉어내지 않았다.
모를 내어 심으면 일부는 잎끝부터 누렇게 타들어가며 말라죽었다.
가을걷이를 마쳐도 대식구의 끼니를 잇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가난은 여전히 집안 문턱을 넘나들었다.
아버지는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뻘밭을 보며 다른 방도를 찾았다.
눈앞에 펼쳐진 서해 바다는 온통 짠물투성이였다.
그 시절 섬마을에서 소금은 쌀만큼이나 귀한 밑천이었다.
생선을 절이든 겨우살이 김장을 담그든 집집마다 소금이 바닥나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는 간척지 둔덕 안쪽의 평평한 갯바닥을 골라 천일염전을 열기로 했다.
바닷물을 가두어 볕과 바람으로 말려 소금을 거두는 천일제염이었다.
배병희는 아버지를 따라 뻘밭으로 나갔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뻘을 삽으로 퍼 올려 바닥을 판판하게 골랐다.
사방에 흙둑을 쌓아 수로를 내고 소나무 널빤지로 수문을 달았다.
뙤약볕 아래서 갯바닥을 다지는 동안 등가죽이 벌겋게 벗겨졌다.
밀물이 차오르면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가두었다.
땡볕이 갯바닥을 달구자 물이 잦아들며 표면에 얇은 소금막이 어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볕이 내리쬐면 하얀 소금꽃이 엉길 참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사람 편이 아니었다.
서해의 바닷바람은 변덕이 심했다.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들이닥치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공들여 졸여가던 짠물은 빗물에 씻겨 한순간에 흙탕물로 변했다.
둑이 터지고 갯물이 넘치며 염전 바닥은 쑥대밭이 되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는 더 큰 벽이었다.
날이 개어 소금이 맺힌다 해도 육지 장터로 실어 나를 배편이 마땅치 않았다.
소금값은 헐값인데 뱃사람에게 건넬 운반비가 더 들었다.
천일염전은 흙탕물만 남긴 채 허망하게 끝났다.
첫 번째 밑천을 날리고도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거센 파도를 막아 둑을 쌓았던 노인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하늘만 쳐다보다 망칠 순 없다.
이젠 불을 때서 구워내야 한다."
아버지가 다음으로 붙잡은 길은 전통 자염(煮鹽)이었다.
바닷물을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로 달여 소금을 구워내는 방식이었다.
하늘의 볕을 기다리는 대신 사람의 손으로 바닷물을 졸여 소금을 거두겠다는 뚝심이었다.
아버지는 빚을 내어 커다란 무쇠솥과 넓적한 철판을 들여왔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소금막을 세우고, 돌과 흙을 이겨 거대한 아궁이를 지었다.
갯벌 흙을 갈아엎어 바닷물을 거르고 걸러 짙은 짠물인 함수를 모았다.
배병희는 지게로 짠물을 져 날라 가마솥에 가득 채웠다.
정작 뼈를 깎는 고생은 아궁이 앞에서 시작되었다.
사흘 밤낮으로 짠물을 졸이느라 불을 지폈다.
불길이 잦아들면 물이 더디 졸아들어 장작을 다시 밀어 넣어야 했다.
배병희와 아버지는 야산으로 올라가 소나무와 참나무를 베어 넘겼다.
지게 다리가 휘어지도록 장작을 져 나르고 소달구지로 땔나무를 실어 날랐다.
하지만 가마솥 아궁이는 끝을 모르는 불구덩이였다.
나무 짐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불길은 땔감을 찰나에 삼켜버렸다.
붉은 화염이 솥바닥을 핥을 때마다 매캐한 솔연기가 소금막 안을 자욱하게 채웠다.
낮이고 밤이고 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을음투성이가 된 얼굴로 아궁이 깊숙이 장작을 밀어 넣었다.
배병희는 땀을 훔치며 쇠갈퀴로 불씨를 고르고 땔나무를 받쳤다.
열기에 눈두덩이 짓무르고 손등이 벌겋게 익어갔다.
가마솥 안에서 짠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끓어올랐다.
하얀 수증기가 지붕을 뚫고 밤바다 위로 치솟았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자 솥 안의 물이 자작하게 졸아들었다.
거품이 꺼진 솥바닥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눈처럼 하얀 소금 결정이 솥바닥과 가장자리에 소복하게 차올랐다.
자염은 천일염보다 입자가 곱고 뽀얀 빛을 띠었다.
가마솥에 넘칠 듯 피어난 순백의 소금꽃을 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소금막 가득 짭조름한 냄새가 진동했다.
구워낸 소금을 삼베 바구니로 건져 올려 물기를 뺐다.
볏짚 가마니마다 하얀 자염이 묵직하게 채워졌다.
마당 한편에 쌓인 소금 가마니를 보며 식구들은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배병희의 손에 쥐어진 장부는 전혀 다른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병희는 헛간에서 몽당연필을 쥐고 낡은 공책을 폈다.
숫자를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쇠솥과 철판을 사 들여온 밑천.
사흘 동안 산더미처럼 태워 없앤 장작 값.
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소달구지 주인에게 건넨 품삯.
여기에 소금을 광천 장터까지 싣고 나갈 뱃삯과 마차 삯까지 더했다.
배병희의 연필 끝이 종이 위에서 무겁게 멎었다.
장터에서 거래되는 소금 한 가마니 시세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육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값싼 소금에 밀려 섬 자염은 제값을 받지 못했다.
도무지 셈이 맞지 않았다.
소금 스무 가마니를 다 내다 팔아도 아궁이에 들이부은 장작 값의 절반조차 건지지 못했다.
소금을 더 많이 구워낼수록 밑천만 축나고 빚만 불어나는 꼴이었다.
흘린 땀값은커녕 남은 것은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뿐이었다.
솥은 하얀 소금을 토해냈지만 살림은 잿더미 속으로 가라앉았다.
밑천을 건지지 못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튿날 새벽, 아버지는 불 꺼진 아궁이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검댕 묻은 거친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노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생 흘린 정직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버지였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불을 지폈건만 남은 것은 무거운 빚문서뿐이었다.
배병희는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실함이 모자라 일어난 일이 아니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청년은 말없이 쇠삽을 집어 들었다.
배병희는 웅크린 채 식어버린 아궁이 속으로 삽을 밀어 넣었다.
검은 숯과 하얀 참나무 재가 삽날에 얹혀 나왔다.
배병희는 아궁이 바닥을 긁어내며 식은 잿가루를 묵묵히 마당 구석으로 져 날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잿가루가 날려 청년의 옷을 검게 물들였다.
아궁이 재를 긁어내는 동안, 청년 배병희의 가슴 밑바닥에는 장사의 냉엄한 이치 하나가 못 박히듯 새겨졌다.
밑천과 셈을 헤아리지 않는 노동은 아무리 피땀을 쏟아도 헛손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땀을 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셈을 맞추는 일이었다.
들어가는 밑천과 거두는 몫의 무게를 미리 저울질하지 않는다면, 육신의 고통은 그저 가난을 부르는 덫이 될 뿐이었다.
소금막의 가마솥은 차갑게 식어 뜯겨 나갔다.
무쇠솥과 녹슨 철판은 헐값에 넘겨졌고, 빚을 갚기 위해 식구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연이은 실패는 집안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청년 배병희의 가슴속에는 전혀 다른 불씨가 지펴졌다.
그는 더 이상 앞뒤 가리지 않고 몸부터 내던지던 일꾼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셈부터 끝냈다.
투입할 품과 밑천, 거두어들일 결실의 숫자를 저울에 달아보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걷이가 시작되자, 배병희는 볏단이 쌓인 논둑에 멈추어 섰다.
청년의 시선이 들판 한가운데 쌓인 거대한 볏단 더미에 단단하게 가닿았다.
요란한 발동기 소리와 함께, 낟알을 단숨에 털어낼 쇠붙이 기계의 밑그림이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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