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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소금기 밴 6만 평
1977년, 화성 독정리
서해 바닷바람을 뚫고 달려온 낡은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멈춰 섰다.
1977년 이른 봄, 화성 독정리의 들머리였다.
배병희 일가가 새로 짐을 푼 곳은 간척지 이주민에게 분양된 열여덟 평 시멘트 기와집이었다.
시멘트 블록을 쌓아 올린 벽은 얇았다.
기와 틈새로는 차가운 갯바람이 들이쳤다.
방은 세 칸, 아궁이도 셋이었다.
이삿짐을 부려놓자 방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든 노모와 아내, 아직 어린 네 남매가 한 지붕 아래 모였다.
고향 안면도에서 홀로 둘 수 없어 모셔온 마을 어르신까지 한 식구가 되었다.
숟가락 여덟 개가 부딪치는 밥상은 비좁았고 식솔을 건사해야 할 가장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지평선 끝까지 아득하게 뻗어 나간 너른 들판이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부에서 분양받은 농지는 7정보, 약 2만 1천 평이었다.
거기에 고향에서 이십여 년간 김 사업을 꾸려 모은 밑천을 모조리 털어 넣었다.
13정보, 약 3만 9천 평을 더 사들였다.
마침내 손에 쥔 땅은 총 20정보, 무려 6만 평에 달했다.
고향 안면도에서 손수 바다를 막았던 논은 기껏해야 삼천 평이었다.
그에 비하면 육만 평은 끝 모를 바다나 다름없었다.
이 너른 들판에 기계를 들여 큰 농사를 짓고 싶었다.
수원으로 유학 간 큰아이들과 어린것들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치겠다는 결심 하나로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낯선 간척지는 첫해부터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이곳은 손수 가마니를 날라 바다를 막았던 안면도의 갯땅이 아니었다.
정부가 남양만 방조제를 쌓아 바닷길을 끊고, 불도저로 밀어 분양한 거대한 간척 농지였다.
바닷물이 물러간 지 불과 몇 해 되지 않은 땅이었다.
겉흙만 마른 먼지를 날릴 뿐, 땅속 깊은 곳에는 수천 년 동안 절어 있던 짠물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흙을 한 줌 쥐어 코에 대면 갯바닥 특유의 비릿하고 짠 내가 훅 끼쳤다.
봄철 첫 모내기가 시작되자 들판은 온 동네가 매달려야 하는 큰 싸움터가 되었다.
일가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안면도에서 싣고 온 10마력 경운기가 뻘흙을 갈아엎었고, 품삯을 주고 부른 일꾼들이 논으로 들어갔다.
허리를 굽혀 손으로 일일이 어린 모를 꽂아 넣었다.
며칠 밤낮을 흙탕물 속에서 뒹군 뒤에야 6만 평 들판에 파릇한 모가 줄을 지어 섰다.
그러나 모내기를 마친 뒤에도 비가 충분히 오지 않았다.
가뭄이 초여름까지 이어졌다.
남양만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북서풍이 들판을 사정없이 훑고 지나갔다.
거센 갯바람이 논에 겨우 채워둔 물기를 모조리 말려버렸다.
논물이 잦아들자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소금기가 기어올라왔다.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갈라진 흙 틈새마다 마치 서리가 하얗게 내린 듯 버석거리는 소금꽃이 논마다 피어올랐다.
흙을 짚으면 차진 흙 대신 꺼끌꺼끌한 소금 알갱이가 손가락에 잡혔다.
어린 볏모들이 그 독한 짠물을 견뎌낼 리 없었다.
잎 끝이 누렇게 마르더니 이내 붉게 녹이 슨 것처럼 타들어갔다.
소금기에 찌든 모는 뿌리를 제대로 뻗지 못하고 시들어 갔다.
볏모 뿌리에 묻은 흙에서 비릿한 짠내가 손끝에 배었다.
"이 땅은 논이 아니여.
천하의 몹쓸 소금밭이여."
이웃 농민들이 흙 묻은 장화를 벗어 던지며 논두렁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부가 사람 잡으려고 이 땅을 팔았구먼.
모를 심어봐야 죄다 타죽는데 농사는 무슨 놈의 농사여."
논두렁 곳곳에서 탄식과 원망이 터져 나왔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6만 평 들이 붉게 타죽은 볏모로 허망하게 뒤덮여 갔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열여덟 평 시멘트 기와집의 그림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갯바람이 들이칠 때마다 얇은 블록 벽체가 울리며 마른 흙먼지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문틈 너머로 여든 노모의 마른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향에서 함께 올라온 마을 어르신은 저녁상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제 밥그릇 하나가 짐이 되는 것 같아 목구멍으로 밥을 온전히 넘기지 못했다.
수원으로 유학 보낸 큰아이들의 방세와 학비를 마련할 날도 어김없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 버거운 살림 속에서도 아내는 묵묵했다.
불평 한마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말없이 식구들의 끼니를 챙겼다.
딸은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가방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모녀는 갈퀴를 챙겨 들고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바싹 마른 솔숲을 헤치며 떨어진 솔잎을 긁어모았다.
세 아궁이에 날마다 불을 지피려면 솔잎 땔감이 산더미처럼 필요했다.
딸아이의 손등은 솔가시에 찔려 성한 날이 없었다.
땀방울에 솔가루와 흙먼지가 뒤엉켜 뺨이 거뭇거뭇했다.
마당에 쌓인 솔잎 더미는 긴 밤의 추위를 버텨낼 유일한 땔감이었다.
아내는 솔잎을 태워 밥을 짓고 마당 한구석에 채마밭을 일구었다.
"저 땅도 낯선 사람들을 맞아들이느라 속병을 앓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너무 애태우지 마세요."
아내가 건네는 담담한 말 한마디에 배병희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밤이 깊어 식구들이 모두 잠에 빠져들자 배병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전등 하나를 쥐고 사립문을 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6만 평 들판을 홀로 걸었다.
마른 갈대밭을 스치는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만이 귓전을 때렸다.
배병희는 논두렁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았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맨손으로 쓸어내렸다.
손바닥 가득 차갑고 버석거리는 소금기가 만져졌다.
시든 볏모를 집어 올리자 뿌리에 묻은 흙에서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배병희는 어둠 속에서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입술 안쪽이 터지며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안면도 밑천을 몽땅 털어 넣은 땅이었다.
식구들의 생계가 이 육만 평에 걸려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배병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하지 않았다.
바다를 상대로 젊음을 바쳐온 사내였다.
주저앉아 한탄해 봐야 바다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병희는 안면도 중장리 앞바다에서 김발을 매던 날들을 떠올렸다.
바닷물은 그저 둑을 막아 가둔다고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조류의 흐름을 읽고 밀물과 썰물의 높낮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야 했다.
물길을 알고 바다의 성질을 다룰 줄 알 때 비로소 바다는 검푸른 김을 내어주었다.
땅속에 밴 소금도 마찬가지였다.
'소금은 가만히 둔다고 날아가지 않는다.
흙 속에 갇힌 소금은 물로 씻어내야만 빠져나간다.'
문득 머릿속에 물길의 이치가 떠올랐다.
이곳은 사방이 막힌 뻘밭이 아니었다.
정부가 남양만을 막으며 만들어 둔 거대한 담수호인 남양호가 지척에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간선 수로와 배수로가 그물처럼 얽혀 있었다.
소금을 밀어내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남양호의 민물을 논으로 가득 끌어들여 흙 속의 소금기를 우려내야 했다.
그런 다음 소금을 머금은 물을 물꼬를 터 배수로로 남김없이 빼내야 했다.
물을 채우고, 소금을 우려내고, 물을 빼내는 일.
그 고된 작업을 벼가 자랄 만큼 흙의 짠 기운이 줄어들 때까지 수없이 반복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새벽안개가 들판 위로 희뿌옇게 번져 올랐다.
배병희는 손전등을 끄고 논두렁 위로 우뚝 일어섰다.
모진 노동으로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에 하얀 소금기 섞인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논머리에 우직하게 서 있는 안면도 10마력 경운기의 묵직한 쇠붙이가 새벽 이슬을 머금고 번뜩였다.
들판 너머 남양호 쪽으로 길게 뻗은 물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땅이 소금을 품고 있다면, 그 소금을 씻어낼 물길을 직접 뚫으면 그만이었다.
경운기 손잡이를 쥔 배병희의 거친 손에 묵직한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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