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쇠갈고리 ​

겨울 갯바람이 부는 1936년 중장리의 비탈밭과 초가마을
1930년대~1940년대 초, 안면도 중장리

동지섣달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닥치면, 바닷가 오두막의 낡은 창호지 문풍지가 밤낮없이 울었다.

사방이 거친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 충남 태안 안면도 중장리.

1936년 겨울, 배병희는 갯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그 언덕배기 마을에서 삼남 이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땅은 메마르고 척박했다.

비탈진 황토밭에는 자갈과 모래가 반이나 섞여 있었다. 비가 오면 붉은 흙물이 도랑으로 쓸려 내려갔다.

비탈밭을 일궈 고구마와 감자, 보리를 심었으나 대식구의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밥상 위에는 늘 보리 낱알이 멀겋게 뜬 시래기죽이나 삶은 감자 몇 알이 전부였다.

대식구의 끼니를 잇게 한 것은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드러나는 잿빛 개펄이었다.

칠흑 같은 한밤중이든 동틀 녘이든, 썰물 때가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부엌문을 나섰다.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닳아빠진 ‘조새’가 들려 있었다.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자연산 굴 껍데기를 쪼아 알맹이를 발라내는 작은 쇠갈고리였다.

손잡이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 모양 그대로 깊게 파여 있었고, 날카롭던 갈고리 끝은 뭉툭하게 닳아 있었다.

어머니는 짚신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살얼음이 버석거리는 개흙을 밟으며 묵묵히 겨울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수채화로 그린 실제 조새 형태의 굴 채취 도구로 바위의 굴을 따는 어머니

북서풍이 몰아치는 겨울 갯가는 거대한 얼음 구덩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매서운 파도 거품이 채 마르지 않은 바위틈에 쪼그려 앉아 쉴 새 없이 조새를 놀렸다.

탁, 탁, 탁.

쇠갈고리가 돌처럼 단단한 굴 껍데기를 내리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갯벌 위로 번졌다.

부서진 하얀 껍데기 조각과 시린 짠물이 어머니의 뺨과 해진 치맛자락으로 튀어 올랐다.

어머니의 손마디는 모진 칼바람과 바닷물에 터져 성한 곳이 없었다.

벌겋게 짓무른 살갗 사이로 짠물이 스며들 때마다 생살이 타들어 가듯 아렸지만, 어머니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조새 끝에 걸려 나오는 뽀얀 굴 알맹이 한 점이 곧 자식들의 목숨줄이었다.

어느 겨울날, 어린 배병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몰래 갯벌로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작은 손에 찌그러진 바가지 하나를 쥐고 어머니의 일손을 거들겠다며 뒤를 쫓았다.

하지만 여섯 살배기의 짧은 걸음으로 겨울 개펄을 건너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목이 차가운 개흙 속으로 푹푹 꺼졌고, 살얼음 조각이 뜬 짠물이 버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발가락 끝이 칼로 베어내는 듯 시려 오더니 이내 감각이 사라지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진흙투성이가 되어 겨우 갯바위 근처에 닿았을 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린 막내가 시퍼런 입술로 떨며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어머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는 조새를 쥔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매섭게 소리를 질렀다.

"여그가 어디라고 기어 나와! 당장 집으로 안 들어가!"

칼바람을 뚫고 날아온 불호령이었으나, 조새를 쥔 어머니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갈라진 손등 틈새로 붉은 핏물이 짠물과 뒤섞여 번져 나오고 있었다.


겨울 황토 돌밭을 괭이로 일구는 아버지와 큰 네발 쇠스랑을 잡은 여섯 살 배병희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언덕배기로 쫓겨 올라온 소년의 눈에 비탈진 황토밭이 들어왔다.

산자락 밭에서는 아버지가 굽은 허리로 괭이를 찍어 내리고 있었다.

온 식구가 새벽부터 뼈가 휘도록 움직여도 가난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비탈진 돌밭 한 귀퉁이라도 더 일궈야 봄에 감자 한 알이라도 더 묻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입은 낡은 무명 저고리 등판은 찬 바람 속에서도 땀과 흙먼지에 절어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괭잇날이 얼어붙은 자갈밭을 내리찍을 때마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년은 마당 한구석에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손등에서 피가 배어 나오도록 굴을 쪼던 어머니의 손과, 돌밭을 파헤치는 아버지의 굽은 등판이 자꾸만 눈앞에 겹쳐졌다.

배병희는 들고 있던 빈 바가지를 마루 끝에 내려놓고 뒤란 헛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침침한 헛간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쇠스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들이 쓰다가 자루가 헐거워져 한편에 세워둔 낡은 연장이었다.

네 갈래로 뻗은 무쇠 발에는 붉은 녹이 슬고 지난가을의 흙이 단단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소년은 제 몸집보다 큰 쇠스랑을 질질 끌다시피 어깨에 메고 비탈진 황토밭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갔다.

아버지가 일구는 밭에서 조금 떨어진 가장자리에는 마른 억새 뿌리와 잔돌이 뒤엉킨 채 버려진 땅이 있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두 발을 벌려 단단히 딛고 섰다.

작은 어깨를 한껏 젖혀 쇠스랑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굳은 땅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쇠발이 흙 속의 돌멩이에 부딪혀 튕겨 올랐다.

손목에서부터 어깨뼈까지 저릿한 진동이 울렸다.

거친 참나무 자루에 쓸린 손바닥이 단박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쇠스랑을 다시 높이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발뒤꿈치까지 바짝 들며 제 작은 몸뚱이의 무게를 온전히 실어 흙바닥으로 날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작은 몸으로 밭고랑의 돌을 골라내는 여섯 살 배병희

우지직 소리를 내며 얼어붙은 흙덩이가 쪼개지고 마른 먼지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자루를 온몸으로 비틀어 누런 흙을 뒤집고 질긴 풀뿌리를 털어냈다.

흙 속에서 불거져 나온 주먹만 한 돌멩이들은 곱은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어 밭두렁 밖으로 던졌다.

열 번, 스무 번.

쇠스랑질이 이어지자 여린 손바닥 안쪽에 금세 붉은 물집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집이 터지면서 끈적한 진물과 핏물이 배어 나왔다.

쓰라린 생살에 거친 황토 모래가 달라붙어 자루를 쥘 때마다 불에 덴 듯 아팠지만, 소년은 쇠스랑 자루를 놓지 않았다.

엉성하나마 고랑이 한 뼘씩 넓어질 때마다 소년의 작은 어깨가 가쁘게 들썩였다.

그때 등 뒤에서 마른 흙을 밟는 묵직한 발소리가 다가와 멈췄다.

배병희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리자, 괭이를 짚은 아버지가 밭둑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들의 손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없이 밭둑에 세워둔 지게 쪽으로 걸어갔다.

지게 섶에 매어둔 무명 보퉁이를 천천히 풀자, 그 안에서 온기를 간직한 굵은 삶은 감자 한 덩이가 나왔다.


비탈밭에서 아버지가 여섯 살 배병희에게 감자를 건네는 순간

아버지는 흙이 말라붙은 투박한 손으로 감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소년 앞으로 다가와, 핏물과 흙이 엉긴 그 작은 손바닥 위에 뜨끈한 감자를 가만히 얹어주었다.

"식기 전에 먹어둬라."

아버지는 거친 손바닥으로 소년의 작은 어깨를 한 번 쥐어주고는 뒤돌아섰다.

다시 제 고랑으로 걸어가 묵묵히 괭이를 치켜올렸다.

소년은 두 손으로 감자를 감싸 쥐었다.

갈라진 껍질 틈으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곱은 손가락과 쓰라린 상처를 따스하게 데워주었다.

소년은 손 안의 뜨거운 감자를 껍질째 크게 베어 물었다.

흙냄새가 배어 있는 퍽퍽하고 구수한 단맛이 마른 목구멍을 타고 묵직하게 넘어갔다.

그날 이후 소년의 손에서는 쇠스랑이 떠나지 않았다.

손바닥의 물집이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어른 손 못지않게 누렇고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말수는 적었으나 소년의 쇠스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돌멩이 하나 남지 않은 반듯한 고랑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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