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넘친 소금 ​

소금기가 남은 간척논에서 누렇게 마른 모를 살피는 부자
1970년대 초, 안면도 갯가

그 시절 섬마을에서 소금은 쌀만큼이나 귀한 살림 밑천이었다.

잡은 생선을 절이든 겨우살이 김장을 담그든 집집마다 소금이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는 간척지 둔덕 안쪽의 평평한 갯바닥을 골라 염전을 일구기로 마음먹었다.

바닷물을 가두어 햇볕과 바람으로 말려낼 요량이었다.

배병희는 형들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다시 뻘밭으로 나갔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뻘을 삽으로 퍼 올려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고, 통나무 판자를 끌어 바닥을 단단하게 다졌다.

사방에 낮은 흙둑을 쌓아 물길을 내고 소나무 널빤지를 깎아 수문을 달았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서 갯바닥을 고르는 동안 등가죽이 벌겋게 익어 허물이 벗겨졌다.

밀물이 차오르자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가두었다.

며칠 동안 땡볕이 염전 바닥을 달구자 물이 잦아들며 수면 위로 살얼음 같은 얇은 소금막이 어리기 시작했다.

사나흘만 더 볕이 내리쬐면 하얀 소금 결정이 굵게 엉길 참이었다.


장대비 속 우장을 걸치고 삽을 든 배병희와 물살에 터진 염전의 흙둑

그러나 서해의 하늘은 사람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축축해지더니, 맑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와 양동이로 퍼붓듯 장대비를 쏟아냈다.

배병희가 우장을 걸치고 삽을 든 채 염전으로 내달렸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며칠간 공들여 졸여 놓은 짠물은 쏟아지는 빗물에 섞여 순식간에 누런 흙탕물로 변했다.

불어난 물살에 낮은 흙둑 허리가 맥없이 터져 나가며 염전 바닥은 한나절 만에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거센 바다를 막아 논을 일구었던 아버지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하늘만 쳐다보다가 식구들 입에 거미줄 치겠다. 비바람이 못 망치게 이젠 가마솥에 불을 때서 구워내야 한다."

아버지가 다시 붙잡은 길은 옛 방식 그대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자염(煮鹽)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빚을 내어 커다란 무쇠솥과 넓적한 철판을 들여왔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억새와 나무로 소금막을 세우고, 돌과 진흙을 이겨 거대한 아궁이를 앉혔다.

볕 좋은 날 갯벌 흙을 써레로 갈아엎어 소금기가 배어 나오게 말렸다.

그 흙을 구덩이에 모아 바닷물을 부어 걸렀다.

혀끝이 아릴 만큼 짙은 함수(鹹水)가 고였다.

배병희는 지게에 물통을 달아 묵직한 함수를 져 날라 가마솥에 가득 채웠다.

정작 큰 고역은 아궁이 앞에서 시작되었다.

솥 안의 짠물을 소금으로 졸여내려면 사흘 밤낮으로 불길이 끊겨서는 안 되었다.

불기운이 조금만 죽어도 물이 더디 줄어들어 장작을 쉴 새 없이 밀어 넣어야 했다.

그 불을 대느라 배병희와 아버지는 날마다 야산으로 올라가 소나무와 참나무를 베어 넘겼다.

지게 다리가 휘어지도록 생나무와 마른 장작을 져 나르고, 품삯을 주어 소달구지로 땔나무를 실어 날랐다.

산더미처럼 쌓아 둔 나뭇짐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거대한 아궁이는 땔감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불길이 솥바닥을 핥을 때마다 매캐한 솔 연기와 열기가 소금막 안을 숨 막히게 메웠다.


수채화로 그린 자염 철판 아래 아궁이에 장작을 넣는 아버지와 아들

낮이고 밤이고 아궁이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을음과 땀이 엉겨 시커멓게 된 얼굴로 아궁이 깊숙이 장작을 밀어 넣었다.

배병희는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훔치며 쇠갈퀴로 불씨를 고르고 땔나무를 받쳤다.

화끈거리는 열기에 눈두덩이 벌겋게 짓무르고 손등 살갗이 바짝 마르며 익어갔다.

가마솥 안에서 짠물이 허연 거품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끓어올랐다.

자욱한 수증기가 소금막 지붕 틈을 뚫고 밤바다 위로 허옇게 치솟았다.

꼬박 이틀 밤을 뜬눈으로 새우자 솥 안의 물이 자작하게 졸아들었다.

거품이 잦아든 솥바닥에서 사각,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눈처럼 하얀 소금 결정이 솥바닥과 가장자리에 소복하게 차올랐다.

불로 달여 구워낸 자염은 천일염보다 입자가 곱고 뽀얀 빛을 띠었다.

가마솥에 넘칠 듯 피어난 소금꽃을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거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소금막 가득 구수하면서도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진동했다.

배병희는 뜨거운 소금을 삼베 바구니로 퍼 올려 간수를 뺐다.

볏짚 가마니마다 하얀 자염이 묵직하게 채워졌다.

마당 한편에 스무 가마니 남짓 쌓인 소금 더미를 보며 식구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화색이 도는 듯했다.

그러나 그날 밤, 등잔불 아래 앉은 배병희의 손끝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밤 헛간의 등잔불 아래 소금가마니 곁에서 장작값과 운반비를 계산하는 배병희

배병희는 헛간 한구석에서 침 바른 몽당연필을 쥐고 낡은 공책을 폈다.

장터에서 어깨너머로 익혀 두었던 셈법으로 숫자를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빚을 내어 무쇠솥과 철판을 들여온 밑천.

사흘 밤낮으로 산더미처럼 태워 없앤 장작값.

산에서 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소달구지 주인과 일꾼들에게 건넨 품삯.

여기에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광천 장터까지 실어 나를 뱃삯과 마차 삯까지 더했다.

종이 위를 움직이던 배병희의 연필 끝이 딱 멎었다.

육지에서는 대규모 염전에서 쏟아져 나온 값싼 천일염이 장터를 뒤덮고 있었다.

장터에서 거래되는 소금 한 가마니 시세는 바닥을 기었고, 품이 많이 든 섬 자염이라고 해서 웃돈을 쳐주는 상인은 없었다.

아무리 숫자를 다시 더하고 빼보아도 도무지 셈이 맞지 않았다.

마당에 쌓인 소금 스무 가마니를 광천 장터에 다 내다 팔아도, 사흘 동안 아궁이에 들이부은 장작값의 절반조차 건질 수 없었다.

가마솥에 불을 지펴 소금을 많이 구워낼수록 밑천만 축나고 빚만 불어나는 꼴이었다.

배병희는 공책을 덮지 못한 채 멍하니 숫자만 내려다보았다.

소금꽃이 피어오르던 가마솥 앞에서 안도하던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이 떠올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 꺼진 소금막의 재를 치우는 아들과 빈손으로 낙담한 아버지

이튿날 새벽, 소금막으로 나간 배병희의 발걸음이 문턱 앞에서 멈추었다.

아버지가 불 꺼진 아궁이 앞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간밤에 이미 장터 시세와 불어난 빚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다.

검댕 묻은 거친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노인은 깊이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생 정직하게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아버지였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눈두덩이 짓무르도록 불을 지폈건만, 돌아온 것은 감당하기 힘든 빚뿐이었다.

배병희는 아버지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청년은 아버지 곁에서 말없이 쇠삽을 집어 들었다.

허리를 숙여 차갑게 식어버린 아궁이 속으로 삽날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사흘 밤낮을 타오르던 불길은 온데간데없고, 시커먼 숯검댕과 하얀 참나무 재만 가득 얹혀 나왔다.

배병희는 아궁이 바닥을 박박 긁어내며 식은 잿가루를 묵묵히 마당 구석으로 퍼 날랐다.

새벽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날아오른 잿가루가 청년의 땀 절은 옷자락에 검게 내려앉았다.

차갑게 식은 재를 긁어내는 동안 배병희는 한 가지 이치를 똑똑히 깨달았다.

아무리 피땀을 쏟아부어도 들어가는 밑천과 거두는 몫의 셈이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땀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몸을 던지기 전에 정확한 셈부터 앞세워야 했다.

얼마 뒤 소금막의 가마솥이 뜯겨 나갔다.

무쇠솥과 녹슨 철판은 빚쟁이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졌고,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식구들은 허리띠를 한 칸 더 졸라맸다.

그해 가을, 계절이 바뀌어 황금빛 들판에 추수가 시작되자 배병희는 벼를 베어 눕힌 논둑 한가운데에 멈추어 섰다.

들녘 곳곳에 베어낸 볏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나, 일손이 모자라 제때 털어내지 못한 농민들이 타작마당마다 발을 구르고 있었다.

청년의 시선이 수북하게 쌓인 볏단 더미와 마을 사람들의 지친 등판 위로 단단하게 가닿았다.

들어갈 밑천, 그리고 반나절 만에 털어낼 알곡의 몫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맞물려 돌아갔다.

요란한 발동기 소리와 함께, 낟알을 단숨에 훑어낼 밑그림이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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