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갯벌의 말뚝

가을 타작을 마치자 겨울 김 일을 준비할 철이 돌아왔다.
늦가을 타작마당의 흙먼지가 가라앉자 안면도 들판에 서릿발이 소금 바늘처럼 하얗게 돋아났다.
배병희는 밭농사와 함께 해오던 김 일을 겨울마다 이어갔다.
이번에는 김발을 더 마련할 생각이었다.
배병희는 마른 그루터기만 남은 빈 들판을 지나 중장리 앞바다로 걸어 나갔다.

안면도 남쪽 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유난히 컸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끝 간 데 없는 잿빛 개흙이 드러났다.
일꾼들 몫을 나누고 남은 벼 가운데 일부는 겨울 양식으로 떼어 두고, 일부는 내다 팔아 경윳값과 수리비를 치렀다.
남은 벼를 판 돈은 그동안 김을 팔아 모아둔 밑천에 보탰다.
그 밑천으로 대나무와 노끈을 더 사들이고, 겨우내 김을 뜨고 말릴 일손들의 품삯도 넉넉히 챙겨 두었다.
배병희는 대나무를 손질하고, 갯벌에 가져갈 말뚝과 연장도 챙겼다.
칼로 통대를 쪼개어 가느다란 살을 만들고, 마른 짚과 노끈으로 촘촘히 엮어 김 포자가 달라붙을 발을 짰다.
갓 쪼갠 대나무 살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가락 끝이 베여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배병희는 흙 묻은 바지에 피를 쓱 문질러 닦으며 묵묵히 발을 엮어 나갔다.
정작 큰 고역은 겨울 갯벌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바다 물때는 사람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사위가 칠흑처럼 어두운 한밤중이든 동트기 전 새벽이든, 썰물이 빠져나가면 지체 없이 바다로 나서야 했다.
살얼음이 서걱거리는 갯벌로 첫발을 디뎠다.
목 긴 고무장화를 신었지만 뼛속까지 시린 개흙물 한기가 금세 발가락 끝을 파고들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뻘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을 억세게 물고 늘어졌다.
한 걸음 떼어놓는 데도 허리와 허벅지의 힘을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했다.
지게에 실린 말뚝과 김발이 어깨뼈를 무겁게 짓눌렀다.
긴 작대기로 어두운 뻘바닥을 짚어가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수평선 너머에서 몰아치는 북서풍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귀가 얼어붙어 감각이 사라졌고, 가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얼음 조각을 삼킨 듯 목구멍이 아렸다.

배병희는 물길이 지나는 뻘 한가운데에 두 발을 깊이 묻고 섰다.
묵직한 나무 메를 양손으로 번쩍 치켜올렸다.
쿵!
둔탁한 울림과 함께 말뚝이 진뻘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튀어 오른 찬 개흙물이 이마와 눈가에 닿자마자 허옇게 얼어붙었다.
말뚝을 박는 일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김발을 매는 높낮이였다.
김은 바닷물에 마냥 잠겨 있어서도 안 되고, 햇볕에 마냥 드러나서도 안 되었다.
밀물이 들면 발이 물속에 잠겨 바다의 거름기를 빨아들이고, 썰물이 지면 물 밖으로 온전히 드러나 겨울 햇볕과 바닷바람을 고루 쐬어야 했다.
발이 너무 낮으면 늘 물에 잠겨 파래 같은 잡풀이 엉겨 붙어 썩어버렸고, 너무 높으면 메마른 칼바람에 포자가 얼어 터져 말라죽었다.
배병희는 말뚝에 남은 물자국과 갯골의 물길을 날마다 눈으로 재고, 맨손으로 물살의 세기를 느끼며 높이를 잡았다.
밤바람이 거세지자 함께 들어온 마을 일꾼들의 손길이 눈에 띄게 무뎌졌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으로 매듭을 짓다 보니 김발 한쪽 끝이 물길 쪽으로 축 처져 있었다.
배병희는 말로 다그치는 대신 가장 물살이 차고 깊은 갯골 어귀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언 노끈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처진 김발을 팽팽하게 끌어올렸다.
"이쪽은 물살이 세니 한 뼘만 더 높여 매야 합니다. 썰물 때 해를 반나절은 온전히 쬐어야 파래가 마르고 김 결이 고와집니다."
배병희가 손수 시범을 보이며 매듭을 단단히 조이자, 언 손을 호호 불던 일꾼들도 다시 눈빛을 다잡고 줄을 고쳐 맸다.
얼음물에 젖은 면장갑은 금세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줄을 당길 때마다 손마디가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시린 짠물에 닿자 감각마저 무뎌졌다.
그때 저 멀리 어둠 너머에서 우르릉거리며 밀물이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병희는 일꾼들을 먼저 뭍으로 내보냈다.
물이 발목까지 차오를 때까지 남아 마지막 김발 매듭을 어금니로 물어 조인 뒤에야 뻘밭을 빠져나왔다.
자정이 훌쩍 지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소금기와 뻘물에 절어 얼어붙은 옷자락이 걸을 때마다 버석거렸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어두운 마당 건너 부엌 문틈으로 뽀얀 김과 함께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남편이 바다에 나간 밤이면 물때가 끝날 때까지 불씨를 죽이지 않고 기다리던 아내였다.
아내는 말없이 마루 밑으로 내려와 살갗에 달라붙은 장갑부터 조심스레 벗겨냈다.
"손부터 녹이세요."
아내가 가마솥에서 떠 온 따뜻한 물을 양은 대야에 담아 내려놓았다.
물에 손을 담그자 돌처럼 굳었던 손마디가 녹으며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배병희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숨을 삼켰다.
터진 손등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개흙이 미지근한 물속으로 번져 나갔다.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큼직한 뚝배기가 작은 밥상 위에 올랐다.
가마솥에서 푹 고아낸 미꾸라지 손칼국수였다.
지난가을 타작을 마친 뒤, 겨울철 기력을 보태려고 논둑 도랑을 뒤져 잡아 올렸던 미꾸라지였다.
아내는 그 미꾸라지를 뼈째 무르도록 삶아 체에 곱게 거르고, 묵은 된장과 고추장으로 칼칼하게 장국을 잡은 뒤 홍두깨로 직접 밀어 썬 면을 넉넉히 털어 넣었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얼음장 같던 오장육부가 스르르 풀렸다.
차지고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넘길 때마다 뻣뻣하게 굳었던 사지에 비로소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아내는 밥상 맞은편에 앉아 남편이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내일 새벽 남편이 갈아입을 마른 무명옷의 구김살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폈다.
겨울이 깊어질 무렵, 동지섣달의 매서운 북풍이 몰아쳐 갯벌을 더욱 단단하게 얼렸다.
새벽 썰물에 맞춰 다시 바다로 나간 배병희의 눈앞으로 말뚝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혹독한 조류를 버텨낸 대나무 발들이 반듯하게 수평을 이룬 채 팽팽하게 갯바람을 맞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른 아침 햇살이 회색빛 갯벌 위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햇살을 받은 대나무 살 위로 짙고도 선명한 묵빛이 어렸다.
매서운 칼바람과 얼음 같은 바닷물을 견뎌낸 대나무 발마다, 윤기가 흐르는 검푸른 생김이 빈틈없이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었다.
배병희는 거칠게 부르튼 손끝으로 생김 자락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보드라우면서도 차진 감촉 사이로 싱그러운 겨울 바다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파래 한 올 섞이지 않은 최상품 해태였다.
배병희는 터진 손마디로 김발의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포구 언덕 위에는 생김을 져 나를 지게와 대나무 광주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거둔 김을 집으로 날라 씻고 말릴 일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