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바꾸는 밤

남양호에서 뻗어 나온 간선 수로의 물문을 열자, 흙빛 민물이 도랑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고향 안면도에서 전 재산을 정리해 가져온 밑천이 소금땅 속에 묻힐 판이었다.
배병희는 장화 끈을 조여 매고 논배미마다 물꼬를 터 나갔다.
그러나 초여름 가뭄이 길어지면서 수로의 물줄기가 눈에 띄게 가늘어졌다.
논바닥이 말라가자 이웃 농민들이 물길을 두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여보시오! 저 아래 우리 논도 물이 모자라 모가 타들어가는데, 위쪽에서 외지 사람이 수로를 다 틀어막으면 우린 어쩌란 소리요?"
수로 둑에 몰려든 토박이 농민들이 괭이와 삽자루를 짚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배병희의 논도 소금기가 올라와 모가 붉게 타죽어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여기서 물길을 놓으면 육만 평 농사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배병희는 흙 묻은 삽자루를 꽉 움켜쥐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들 말씀이 맞습니다. 아랫녘 논부터 먼저 물을 넉넉히 채우십시오. 제 논은 낮 동안 물문을 닫아두었다가, 밤에 대겠습니다."
그는 그 길로 자기 논 어귀의 물문을 막아 낮의 물길을 이웃들에게 내어주었다.

마을 불빛이 꺼진 자정이 넘으면 배병희는 건전지를 넣은 손전등을 켜 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낮 동안 볕에 달구어졌던 개흙이 밤이슬에 눅눅해지며 짠내를 뿜었다.
논두렁을 디딜 때마다 고무장화가 개흙에 박혔다가 쩍, 쩍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육만 평 들판의 물꼬를 일일이 돌아야 했다.
낮 동안 아랫녘 논들을 채우고도 수로에 물이 남아 흐르면, 배병희는 논 어귀의 두꺼운 나무 널빤지를 들어 올렸다.
막혔던 물길이 트이며 차가운 민물이 논으로 흘러들었다.
그는 반대편 배수로로 걸어가 논배미마다 파놓은 물꼬를 삽으로 깊게 텄다.
논바닥 흙에서 우러나온 소금물이 배수로를 타고 빠져나갔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혀끝에 대면 아릴 만큼 짰다.
짠물이 빠진 자리에 새 민물이 차오르면 다시 진흙을 퍼 올려 물꼬를 막았다.
물꼬 하나를 손보고 허리를 펴면 어둠 너머로 다음 논배미가 있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물살에 허물어진 논둑을 흙으로 메우고 장화 발로 밟아 다졌다.
바짓가랑이에 튄 흙탕물이 밤바람에 뻣뻣하게 굳었다.
동녘 하늘이 밝아올 무렵이면 온몸이 식은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물갈이만으로는 굳은 간척지를 다 길들일 수 없었다.
소금기를 머금고 엉긴 바닥 흙을 깊숙이 갈아엎어야 했다.
그 일에는 안면도에서 트럭에 싣고 온 십 마력 경운기가 큰 몫을 했다.
당시 화성 들판에서는 여전히 소에 쟁기를 매어 논을 가는 농가가 대부분이었다.
바닷물이 빠진 지 얼마 안 된 갯벌 흙에는 소의 힘만으로 쟁기 날을 박기 어려웠다.
경운기 발동기가 쇳소리를 내며 검붉은 연기를 토했다.
배병희가 조종관을 쥐고 논으로 들어가자, 로터리 날이 돌아가며 굳은 소금 흙을 부수어 뒤집었다.
흙덩이가 부서질 때마다 짠 냄새가 났다.
갯벌 웅덩이에 바퀴가 빠져 헛돌 때면 배병희는 엔진을 끄고 진흙탕으로 들어갔다.
굵은 통나무를 바퀴 밑에 찔러 넣고 한쪽 어깨로 경운기 차체를 받쳐 밀어 올렸다.
무쇠 덩어리에 눌린 어깨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다시 시동을 걸면 경운기는 개흙을 박차고 나아갔다.

배병희는 자기 논 육만 평을 다 갈고 난 뒤에도 경운기의 시동을 끄지 않았다.
일손이 모자라 논을 묵히거나 소를 구하지 못한 이웃 농가로 기계를 몰고 갔다.
"어르신, 소 쟁기질로는 이 찰진 개흙 못 뒤집습니다. 제 기계로 밀어드릴 테니 물만 대십시오."
기름값 한 푼, 품삯 한 됫박 받지 않고 이웃들의 논을 갈아주었다.
가을이면 벼를 베어 묶어주는 보행형 수확기 바인더까지 들판으로 끌고 나갔다.
장정 여럿이 낫을 들고 며칠 매달려야 할 일을 반나절 만에 해주자, 물길을 막아서던 토박이 농민들도 경계를 풀었다.
육만 평 대농은 기계의 힘만으로 다 해낼 수 없었다.
봄에 모를 심고 여름내 피를 뽑으려면 하루에도 수십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배병희는 보릿고개에 끼니를 잇기 어려운 집과 타향에서 갓 들어와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이웃들을 먼저 찾아갔다.
"우리 논으로 나와 일손 좀 보태주십시오. 품삯은 섭섭지 않게 셈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제 논에 들어온 사람들을 빈속으로 일하게 두지 않았다.
아침이면 아내가 커다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은 채 들판으로 걸어왔다.
넓은 논둑 멍석 위에 들밥 상이 차려졌다.
대접에 고봉으로 담긴 쌀밥과 가마솥에서 끓여낸 소고기뭇국에서 김이 났다.
멸치볶음과 열무김치가 양은 접시마다 수북했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올라오십시오. 밥부터 배불리 드시고 일 시작합시다."
배병희는 흙 묻은 손을 씻은 일꾼들에게 숟가락부터 쥐여주었다.
처음에는 타향 사람이라며 낯을 가리던 일꾼들도 국물에 흰쌀밥을 말아 먹으며 얼굴을 폈다.
해가 저물어 일을 마칠 때면 배병희는 품값도 넉넉히 챙겼다.
당장 양식이 급한 이웃들에게는 현금 대신 갓 찧은 흰쌀을 되로 후하게 되어 안겨주는 일이 많았다.
"오늘 진흙탕 속에서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도 꼭 나와 주십시오."
쌀자루를 받아 든 일꾼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외지 사람이라며 거리를 두던 수군거림도 잦아들었다.
품삯이 정확하고 밥 인심이 후한 배병희의 논에는 일손이 꾸준히 찾아왔다.
소금땅을 길들이는 물갈이는 한두 해로 끝나지 않았다.
봄마다 남양호 민물을 가득 가두어 소금기를 우려내고,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나가 물꼬를 터 짠물을 빼내는 날들이 몇 해나 이어졌다.
가뭄만 들면 하얗게 돋아나던 소금꽃이 해마다 줄었다.
쩍쩍 갈라지던 잿빛 갯벌 바닥도 물을 머금고 발목을 감싸는 차진 무논으로 바뀌었다.
이주한 지 몇 해가 지난 늦봄, 다시 모를 심은 육만 평 들판에 짙푸른 빛이 돌기 시작했다.

어린 모포기들은 더 이상 붉게 타죽지 않았다.
짠 기운이 빠진 흙 속으로 하얀 잔뿌리를 뻗은 모들이 갯바람 속에서도 꼿꼿이 섰다.
하루가 다르게 짙푸른 잎을 틔워 들판을 메워 나갔다.
배병희는 둑길에 멈추어 서서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밤마다 삽자루와 물문을 쥐느라 손마디가 거칠어졌다.
찬 흙탕물에 짓무르고 튼 발가락도 밤마다 욱신거렸다.
눈앞에 펼쳐진 육만 평 들판은 이제 벼가 자라는 논이었다.
일렁이는 벼 이삭 너머로 다가올 가을 들녘과 수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바람에 짠내 대신 풀 내음이 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