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정미소를 사다

남양만 바닷바람이 누렇게 익은 들판을 훑고 지나갔다.
한창 벼를 베어 실어 나를 10월이었지만 독정리 분위기는 흉흉했다.
마을 들머리 ‘새마을정미소’의 낡은 함석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끼익거렸다.
바다를 막아 일군 이 간척지 일대에서 벼를 찧는 유일한 정미소였다.
가을 타작이 끝나면 농가마다 벼를 맡겨 식구들 먹을 양식을 빼고, 남은 쌀을 팔아 자식 학비와 겨울 연탄값을 마련했다.
도정한 쌀이 서울과 인천 등지로 팔려 나가면 정미소에서 볏값을 정산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그해 가을 정미소는 멈춰 있었다.
닫힌 창고 판자문 앞에는 농민 십여 명이 흙 묻은 고무장화를 신고 서성였다.
밀린 볏값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주인은 깨진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니까 그러네. 이번 장날만 지나면 틀림없이 쳐줄 테니 그만들 가 보시오!”
주인은 담배꽁초를 시멘트 바닥에 비벼 끄며 미닫이문을 닫아걸었다.
석 달째 똑같은 핑계였다.
창고 안의 쌀은 이미 외지로 다 팔아넘긴 뒤였고, 농민들은 수천 가마의 볏값을 받지 못했다.
“저러다 보따리 싸서 야반도주라도 하면 우린 어쩐댜?”
“읍내 장터에 가 보니, 빚쟁이들이 조만간 저 정미소 기계에 빨간 딱지 붙이러 내려온다는 소문도 돌더구먼.”
정미소 담벼락 뒤의 웅성거림은 해가 져도 잦아들지 않았다.
주인이 빚에 몰려 정미소를 헐값에 팔고 달아날 궁리를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날 밤, 진흙이 말라붙은 장화를 신은 마을 농민 대여섯 명이 배병희의 집 사립문을 두드렸다.
농민들은 마루 끝에 걸터앉아 흙먼지 절은 털모자를 벗었다.
“배 서방,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네.”
안면도에서부터 한 들판을 일구어 온 마을 어르신이 입을 뗐다.
“새마을정미소가 오늘내일 문 닫게 생겼어.”
“외지 빚쟁이들 손에 넘어가 버리면 동네 농사꾼들은 올가을 볏값 한 푼 못 건지는 판이여.”
배병희는 상 위에 양은 주전자를 내려놓고 이 빠진 사발마다 막걸리를 채워 건넸다.
어르신은 술잔을 들지 않고 배병희의 손을 붙잡았다.
“배 서방, 자네가 그 정미소를 인수해 주면 안 되겠는가?”
곁에 앉은 이웃 농민도 무릎을 당겨 앉았다.
“자네는 고향에서 큰 김 공장도 굴려봤고, 고장 난 쇠붙이도 잘 고쳐 쓰잖은가.”
“무엇보다 이 독정리 들판에서 일꾼 품삯 단 하루 안 미루고 제날짜에 쳐준 사람은 자네뿐이여.”
“자네가 맡아만 준다면 온 동네 벼는 다 자네 마당으로 실어 나를 테니 제발 좀 살려주게.”
농민들의 하소연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안방 문이 열렸다.
노모와 어린아이들을 아랫목에 재우고 나온 아내가 배병희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절대로 안 됩니다.”
“남양만에 내려와 소금기 빼내느라 당신이 밤마다 흘린 땀이 얼마입니까.”
“이제 겨우 살림이 나아졌는데, 어째서 남이 망쳐 놓은 빚을 떠맡으려 하십니까.”

“게다가 우리 큰애는 어쩌고요. 고등학교 마치고 돌아와, 이제 내년에라도 대학 보내 공부시키려던 참 아닙니까.”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신이 정미소를 맡으면 큰애 성정에 어찌 모른 척하겠습니까. 내 자식 앞길을 그 낡은 정미소에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배병희는 아내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열여덟 살에 시집와 바다와 간척지를 거치며 대식구 밥상을 차려내느라 거칠어진 손이었다.
그는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우마차에 탈곡기를 싣고 섬 들판을 누비던 젊은 날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다.
벼를 거두어도 쌀로 찧지 않고 남의 손에 넘기면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제 기계로 직접 찧어 쌀로 내보내고 싶었다.
칠 남매를 끝까지 가르치고 간척지에 자리를 잡으려면, 농사짓는 들판과 벼를 찧는 정미소, 도시로 쌀을 내가는 길을 엮어야 했다.
함께 물길을 트고 모를 심어온 이웃들의 형편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배병희는 방바닥을 짚은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임자 마음이 왜 타들어 가는지 내가 왜 모르겠소. 허나 이웃들이 볏값을 못 받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소. 우리 자식들 앞날을 생각해도 정미소를 맡아야 할 일이오.”
그때 방문이 열렸다.
문간에는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려와 있던 맏아들이 서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맏아들이 부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마루 밖에서 말씀 다 들었습니다.”
아내가 놀라 아들의 팔목을 붙잡았다.
“네가 끼어들 일 아니다!”
맏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 대학 진학하지 않겠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제 밑으로 동생들도 다섯이나 있습니다. 장남인 제가 아버지께 짐만 더 얹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배병희는 말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미소 일은 들판 농사보다 곱절은 더 거칠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쇠 다루는 법도 배우고, 사람 대하는 도리도 배우겠습니다.”
배병희는 손을 뻗어 아들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아내는 더 만류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적삼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튿날 아침, 배병희는 장롱 밑바닥에서 누런 서류봉투를 꺼냈다.
밤마다 짠물을 빼내고 갈아 일군 논의 등기권리증이었다.
그는 그 땅 가운데 일부를 떼어 급매로 내놓았다.
계약서 위에 인주 묻힌 목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논을 팔아 마련한 목돈으로 정미소의 땅과 건물을 인수했다.
1983년 10월의 일이었다.

인수 절차를 마친 다음 날 이른 아침, 배병희와 맏아들은 물 빠진 국방색 작업복을 입고 정미소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무 판자문을 밀자 묵은 쌀겨 냄새와 곰팡내가 났다.
구멍 뚫린 함석지붕 틈으로 가을 햇살이 먼지 사이를 비추었다.
배병희는 마룻바닥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에 놀란 참새 떼가 천장 들보 위에서 날아다녔다.
작업장 한복판의 50마력 디젤 발동기에는 기름때와 붉은 녹이 엉겨 붙어 있었다.
목장갑을 고쳐 낀 맏아들이 스패너가 든 공구함을 들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섰다.
부자는 앞으로 손봐야 할 발동기를 말없이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