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으로 건넨 볍씨 ​

매화 핀 뒤뜰과 봄을 기다리는 논
1990년대 초, 독정 정미소

정미소 뒤뜰에 하얀 매화가 피었다.

간척지 농가의 뒤주는 일찌감치 비었고, 들판의 보리 이삭은 아직 푸르렀다.

보릿고개였다.

독정리 들녘마다 논바닥을 고르고 물을 대며 못자리를 펼 철이 다가왔다.

농부들은 마른 흙덩이를 부수고 논둑을 바르느라 분주했다.

가난한 농가 중에는 당장 못자리에 뿌릴 볍씨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집이 있었다.

겨우내 식구들을 먹이느라 종자벼까지 밥솥에 넣은 집들이었다.

이웃끼리도 사정이 거기서 거기라 선뜻 볍씨 한 됫박 꾸어달라고 입을 떼기 어려운 봄이었다.

반면 정미소 뒤편 헛간에는 지난가을 거두어들인 볏가마니가 들보 아래까지 겹겹이 쌓여 있었다.

헛간에는 마른 볏짚과 알곡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배병희는 밤이 깊도록 작업장에 남아 도정기 모터를 손보았다.

회전축 베어링에 기름을 새로 치고 풀린 볼트를 단단히 조인 뒤, 기름때 묻은 스패너를 챙겨 들고 헛간 쪽으로 돌아 나왔다.

서해에서 불어온 밤바람이 땀 식은 옷깃으로 들어왔다.


수채화로 그린 봄밤 볍씨를 자루에 담는 이웃을 보고 조용히 돌아서는 배병희

헛간 모퉁이를 막 돌아서려는데, 어두운 판자벽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언가를 급히 쓸어 담는 소리에 사람의 가쁜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배병희는 발을 멈추고 스패너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벌어진 판자벽 틈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그 아래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웅크려 있었다.

아랫마을에서 남의 논을 얻어 부치며 근근이 식솔을 건사하던 이웃 농부였다.

마른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밑동이 터진 볏가마니 틈으로 박바가지를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긁어낸 볍씨를 해진 비료 포대에 바삐 쓸어 담을 때마다, 여문 낟알들이 헛간 흙바닥에 부딪히며 자작자작 소리를 냈다.

농부는 연신 문 쪽을 돌아보았다.

손끝이 떨렸고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배병희는 숨을 죽였다.

스패너를 쥔 손에서 힘이 풀렸다.

여기서 들키면 저 사내는 마을에서 도둑으로 불릴 터였다.

자식들에게도 말이 따라다닐 수 있었다.

배병희는 열다섯에 가장이 되어 보릿고개를 넘던 안면도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도 빈 뒤주를 긁어야 했다.

배병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뒷걸음질 쳐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잠시 뒤, 이웃 농부가 반쯤 찬 비료 포대를 둘러메고 판자문 밖으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그가 들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배병희는 처마 그늘에 서서 기척을 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배병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시각에 정미소 문을 활짝 열었다.

마당에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히고 도정기 기계를 돌렸다.

오전 무렵 신작로에서 마주친 이웃은 배병희를 보자마자 눈길을 피했다.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배병희는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하고 지나갔다.

사흘 뒤 오후, 배병희는 일감을 정리하고 그 이웃의 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마당 멍석에서 새끼를 꼬던 이웃이 배병희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짚푸라기 묻은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댔다.

배병희는 그 떨리는 손끝을 못 본 척 시선을 거두었다.

작업복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건네고, 성냥을 그어 불까지 붙여준 뒤에야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요즘 정미소에 손 갈 일은 많은데, 봄철이라 일손이 없소. 마당에 볏가마니도 새로 쌓아야 하고 비가림막 손볼 데도 많은데, 며칠 나와서 일손 좀 보태주시겠소?”

이웃은 불붙은 담배를 쥔 채 배병희를 쳐다보았다.

“품삯은 후하게 쳐드릴 테니, 내일 아침 일찍 마당으로 들르시오.”

배병희는 더 말을 얹지 않고 담담히 사립문을 나섰다.


품삯을 받기 전 묵묵히 마당을 쓸던 이웃

이튿날 동녘 하늘이 채 트기도 전에 정미소 마당으로 이웃이 들어섰다.

그는 인사 한마디 건넬 겨를도 없이 곧장 빗자루부터 잡았다.

무거운 볏가마니도 남들보다 먼저 등지게에 짊어졌고, 이마와 등에서 땀이 흘러도 쉬지 않았다.

창고 구석진 곳의 묵은 겨 먼지를 말끔히 쓸어내고, 바람에 느슨해진 방수포 줄을 손바닥이 벌겋게 부르트도록 팽팽하게 당겨 맸다.

사흘 내내 그렇게 일했다.

사흘째 되던 날 해 질 녘, 마당 일이 끝나자 배병희는 땀을 식히던 그를 사무실로 불렀다.

나무 책상 위에는 사흘 치 품삯을 도톰하게 챙겨 넣은 누런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바닥 한쪽에는 굵은 새끼줄로 주둥이를 단단히 여민 볏가마니 하나가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사흘 동안 궂은일 도맡아 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소. 이건 정당하게 일하신 품삯이고, 저 아래 가마니는 올봄 못자리에 부을 볍씨요.”

이웃은 봉투와 가마니를 번갈아 보다가 손사래를 치며 물러섰다.

“배 사장님, 당치도 않습니다.”

“일한 품값만 주시면 됩니다.”

“저 귀한 종자벼를 제가 무슨 염치로 받겠습니까.”

배병희는 품삯 봉투를 집어 그의 거친 손에 쥐여주며 나직이 말했다.

“정미소에 들어온 벼 가운데 알이 가장 굵고 실한 놈으로 골라 담아둔 것이오. 봄에 싹이 튼실하게 터 올라야 가을걷이도 넉넉하지 않겠소. 허튼 생각 말고 가져가서 올해 모나 실하게 잘 키우시오.”


자전거 짐받이에 볍씨 가마니를 묶는 배병희

배병희는 망설이는 이웃을 대신해 볍씨 가마니를 들어 올렸다.

마당에 세워둔 이웃의 낡은 자전거 짐받이에 가마니를 반듯하게 얹고, 검은 고무줄을 여러 겹 둘러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묶어주었다.

이웃은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은 채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해진 소매 끝으로 붉어진 눈가를 훔쳐낸 그가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둑한 들길로 페달을 밟아 나갔다.

배병희는 멀어지는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트럭을 몰고 비포장 신작로를 달리다가도, 무거운 보따리를 이거나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동네 어르신이 보이면 저만치서부터 브레이크를 밟았다.

먼지가 일지 않도록 차를 세워 시동을 끄고, 내려서 허리를 굽혔다.

“어르신, 장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걸음도 무거우실 텐데 어서 타십시오.”

마디 굵은 손으로 어르신을 조심스레 부축해 조수석에 태워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집 안 밥상머리나 일터에서 자식들을 마주할 때도 입버릇처럼 당부했다.

“사람을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것처럼 대하지 마라. 당장 내 눈에 미운 사람일수록 속을 넓혀 더 너그럽게 품어야 한다. 어디를 가든 남의 눈에 눈물 내고 원망 살 일은 만드는 게 아니다.”


수채화로 그린 트럭에서 내려 길섶의 어르신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배병희

정미소의 하루는 새벽 네 시, 안채 부엌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아내는 어슴푸레한 새벽 어둠 속에서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식은 재를 긁어내고 마른 솔잎을 밀어 넣었다.

성냥을 그어 불씨를 지핀 뒤 굵은 참나무 장작을 쟁여 넣으면, 불길이 솥바닥으로 번졌다.

직원 십수 명의 끼니를 한꺼번에 짓는 무쇠 가마솥이었다.

쌀을 씻어 안치고 불길을 키우면 무거운 솥뚜껑 틈으로 하얀 김이 훅 뿜어져 나오며, 밥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옆 솥에서는 멸치를 듬뿍 넣고 묵은 집된장을 푼 시래깃국이 끓었다.

가을 추수철부터 이듬해 봄까지, 정미소 마당에는 곡식을 실은 경운기와 달구지가 끊이지 않고 줄을 이었다.

종일 돌아가는 도정기 소리에 귀가 먹먹했고, 뽀얀 쌀겨 먼지를 뒤집어쓴 직원들의 목구멍은 늘 칼칼하게 마르기 일쑤였다.

아내는 하루에 서너 번씩 그 큰 가마솥을 비우고 다시 채웠다.

두툼하게 썬 두부를 넉넉히 넣은 된장찌개와 사발 위로 수북하게 솟은 고봉밥이 넓은 양철 쟁반에 가득 담겨 마당으로 나갔다.

“새참 드시고들 하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직원들은 등지게에서 볏가마니를 부리고 쌀겨 묻은 목장갑을 벗었다.

마루 끝과 평상에 걸터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에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었다.

아내는 빈 그릇을 거두기가 무섭게 달궈진 가마솥에 물을 부었다.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가 노릇하고 구수하게 풀린 숭늉을 큰 양동이에 가득 담아 날랐다.

직원들은 숭늉을 마시며 칼칼한 목을 축였다.

봄철 양식이 떨어진 집의 아낙들이 정미소 뒤란을 서성이는 날도 많았다.

아낙들은 빈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앞마당으로 나서지 못한 채 담벼락 뒤를 맴돌았다.


쌀보자기를 내민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정미소의 아내

아내는 부엌 창문 너머로 그 기척을 살피면, 마당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뒤란으로 돌아 나가 손짓을 했다.

“이리 들어오세요.”

아낙들을 서늘한 곳간 안으로 이끈 아내는 박바가지로 쌀독 바닥의 쌀을 깊숙이 퍼 올렸다.

갓 찧어 넣어둔 새하얀 낟알이 바가지 가득 소복하게 담겼다.

아내는 보자기를 넓게 펼쳐 쌀을 후하게 쏟아붓고, 네 귀를 단단히 묶어 아낙의 품에 쥐여주었다.

“가서 아이들 뜨거운 밥부터 해 먹이세요.”

“아무 소리 말고 뒷길로 얼른 가요.”

묵직한 쌀보자기를 안아 든 아낙들은 고맙다는 말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는 그들의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살다 보면 이런 고비도 있는 법이지요.”

“마음 약해지지 말고 기죽지 마세요.”

그 인심과 신용은 남양만 들판을 건너 장안면과 우정면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농민들은 십 리, 이십 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경운기에 볏가마니를 가득 실어 독정리로 몰려들었다.

정미소 마당은 해마다 더 큰 활기를 띠었다.

도정기에서 나온 백미가 서울과 인천의 대형 곡물 상회로 실려 나갔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뽀얀 쌀겨가 내려앉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검은 다이얼 전화기가 울렸다.

수년간 정미소 쌀을 도맡아 가져가던 수도권 곡물 도매상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배병희는 기름 묻은 손을 작업복에 닦고 수화기를 들었다.

읽기 설정

글자 크기

줄 간격

서체

화면

배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