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평의 약속 ​

쌀값 압박 속 사무실에서 장부를 살피는 배병희
2000년대 ~ 2010년대, 독정 RPC

2000년대에 들어서자 들판과 밥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한때는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식탁 위에서 밥그릇이 조금씩 밀려났다.

빵과 고기, 온갖 간편식이 자리를 채우며 한 사람이 일 년에 먹는 쌀의 양이 해마다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쌀이 남아돌았다.

정부 양곡 창고마다 묵은 벼가 쌓였고, 가을에 나온 햅쌀도 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양곡 시장에서는 헐값 경쟁이 벌어졌다.

현금이 급한 정미소들은 햅쌀에 묵은쌀을 섞어 팔았고, 너도나도 도매가를 낮췄다.

벼를 많이 사들여 찧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은 끝났다.

산지 볏값이 떨어지고 인근 읍면에서 문을 닫는 정미소가 늘었다.

독정 정미소 사무실에도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배 사장, 저쪽 정미소는 포대당 이천 원씩 값을 더 낮춰서 들어온다는데, 독정리도 단가를 안 맞춰주면 우리도 거래처를 바꿀 수밖에 없소."

도매상들이 요구하는 대로 출하 가격을 낮추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묵은쌀이나 질 낮은 벼를 섞거나, 농민들에게 줄 수매가를 깎아야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배병희가 고개를 저었다.

"농사지은 사람 볏값을 깎아서 버티느니 문을 닫는 게 낫다. 그런 장사는 못 한다."

사무실에 모인 다섯 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업을 맡은 둘째 아들이 거래 장부를 덮으며 말했다.

"헐값 경쟁에 말려들면 정미소도 농민들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밥맛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종자와 토양을 연구하던 셋째 아들이 종자 포대 두 개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종자부터 바꿔야 합니다."

"밥맛이 좋은 쌀이면 소비자도 제값을 주고 찾을 겁니다."

셋째 아들이 내보인 것은, 밥맛이 뛰어나지만 키가 크고 줄기가 약해 농가들이 꺼리던 '고시히카리'와 찰기가 유별난 '백진주'였다.

"우리 간척지 일대 농가들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이 고품질 품종들을 단지화해서 심어야 합니다."

종자 선택부터 재배 방식, 수매까지 정미소와 농가가 하나로 묶이는 고품질 계약재배였다.

진흙 묻은 장화를 신은 마을 농부 수십 명이 마당으로 몰려와 목소리를 높였다.

"배 사장, 고시히카리인지 뭔지 하는 그 벼는 키가 커서 태풍 한 번 불면 죄다 쓰러지는 거 아니오?"

"수확량도 평소에 심던 벼보다 덜 나온다는데, 괜히 생소한 볍씨 심었다가 일 년 농사 망치면 그 손해를 뉘라서 책임질 거요?"

수십 년간 익힌 농사법을 바꾸고 까다로운 새 품종에 한 해 생계를 걸어야 했다.


농민의 두 손에 볍씨를 옮겨 주며 약속한 볏값 보장을 설명하는 배병희

배병희가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손에는 셋째 아들이 선별한 볍씨 한 줌이 들려 있었다.

"어르신들, 동네 형님 아우님들, 저 배병희입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안면도 갯벌에서 건너와 남양만 들판을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일구어 온 얼굴들이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돕니다. 많이만 심어서는 해마다 볏값이 깎입니다. 기르기 까다로워도 좋은 쌀을 길러야 제값을 받습니다."

배병희는 맨 앞에 선 늙은 농부의 두 손에 볍씨를 옮겨 쥐여주었다.

"비바람에 벼가 쓰러지거나 소출이 줄어들까 봐 걱정되시는 줄 압니다. 처음 계약할 때 약속드린 볏값은 그대로 다 쳐드리겠습니다."

마당이 술렁였다.

배병희가 농민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여러분 볏값을 깎거나 정산 날짜를 어긴 적이 있습니까. 3억 원 부도를 맞았을 때는 제 논을 팔았습니다. 여러분 볏값은 끝까지 책임집니다."

한동안 볍씨를 내려다보던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 사장 믿고 올해부터 그 볍씨를 심어봅시다."

약속을 맺은 뒤 다섯 형제가 일을 시작했다.

종자기사 자격을 갖춘 셋째 아들은 친환경 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소독하고 가려낸 우량 보급종 볍씨를 농가마다 나누어 주었다.

논마다 물 대는 시기와 이삭거름 주는 양을 꼼꼼히 적은 영농 일지를 들고 매일같이 들판을 누볐다.

그사이 배병희와 맏아들, 넷째 아들은 정미소 설비를 바꾸는 공사에 매달렸다.

당시 정부는 자금을 지원해 농협을 중심으로 대규모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세우고 있었다.

배병희와 아들들은 그동안 모은 자체 자본을 쏟아부었다.

원료 벼 반입부터 건조, 저온 저장, 정밀 도정, 색채 선별, 자동 포장까지 이어지는 일관 공정 설비를 갖췄다.


2000년대 실제 독정 RPC 사진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일로와 이송 설비·가공 공장 전경

2003년, 독정 정미소는 정부의 시설과 위생 기준을 통과해 민간 자체 조성 미곡종합처리장(RPC) 정식 승인을 받았다.

1983년 10월, 새마을정미소를 인수한 지 꼭 20년 만이었다.

독정 RPC는 해외 판로도 찾았다.

2009년 가을, 독정 RPC 마당에 수출용 컨테이너 트럭이 멈춰 섰다.

화성시 대표 브랜드인 추청 품종의 '햇살드리' 쌀 5톤이 지게차에 실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배병희는 출항을 앞둔 컨테이너 철문을 손바닥으로 짚어보았다.

목선으로 천수만을 건너던 소년이 이제는 간척지 쌀을 컨테이너에 실어 바다 건너로 보내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두바이,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4개 대륙으로 독정 RPC의 쌀이 나갔다.

셋째 아들과 형제들은 구수한 누룽지 향을 지닌 신품종 '골든퀸3호'를 간척지 농가들과 계약재배하여 화성시 통합 브랜드 수향미로 세상에 내놓았다.

가을이 깊어가자 남양만 들녘마다 여문 이삭이 고개를 숙였다.

넷째 아들은 색채선별기와 정밀 도정 라인을 조절했다.

저온 사일로에서 나온 벼가 왕겨를 벗고 선별을 거쳐 쌀로 나왔다.

도정기가 돌면 생쌀에서 누룽지 향이 났다.

포대를 나르던 직원들도 자루 주둥이에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았다.


실제 수향미 포장의 색과 상표를 반영한 쌀 포대와 팔레트의 출하 준비를 확인하는 일꾼

밥을 지으면 구수한 향이 나고 식은 뒤에도 찰기와 윤기가 남아 입소문이 났다.

둘째 아들이 거래를 튼 서울의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도 쌀이 빠르게 팔렸다.

막내아들과 큰며느리가 여러 디지털 플랫폼에 연 온라인 직거래 장터에도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왔다.

"형님, 지금 주문 전화하고 인터넷 결제가 밀려서 창고에 쌀이 모자라 못 팔 지경입니다!"

고시히카리와 백진주, 수향미 계약재배에 참여한 농가들은 일반 벼 수매가보다 높은 값을 현찰로 받았다.

화성 전역에 소문이 퍼지면서 독정 RPC와 계약재배를 하겠다는 농가가 늘었다.

몇십 농가로 시작한 계약재배는 500여 농가, 재배 면적 300만 평에 이르렀다.

여의도 면적의 세 배가 넘는 들판이었다.

가을마다 수십억 원의 수매 대금이 오갔으나, 배병희는 작은 정미소 시절처럼 약속한 정산 날짜를 하루도 넘기지 않았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맏아들에게 직접 학사모를 씌워 주는 배병희

어느 봄날 오후, 늘 쌀겨 묻은 작업복을 입던 맏아들이 양복 차림으로 학사모와 졸업장을 안고 마당에 들어섰다.

스무 살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곁에서 스패너를 쥐었던 맏아들이었다.

그는 마흔다섯에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낮에는 RPC 공장을 총괄하고, 밤에는 돋보기를 쓴 채 아들뻘 학생들 틈에서 녹음기를 돌려가며 강의를 외웠다.

밤을 새워 공부한 끝에 졸업식에서 총장상을 받고 돌아온 참이었다.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졸업장과 상장을 내밀었다.

이마와 눈가에 아버지를 닮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아버지, 늦었지만 무사히 공부 마치고 왔습니다."

배병희는 아들이 건넨 두툼한 졸업장을 받아 들고 한참 동안 말없이 글자를 내려다보았다.

배병희는 열다섯 소년 가장으로 보릿고개를 넘느라 책보 대신 지게를 졌고, 국민학교를 일찍 떠난 일을 평생 아쉬워했다.

배병희는 말없이 학사모를 가져다 새치가 섞인 아들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러고는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

탁, 탁.

그사이 독정 RPC의 작업장도 달라졌다.

등지게로 볏가마니를 나르던 자리에서 자동화 로봇 팔이 쌀 포대를 들어 팔레트에 쌓았다.

창밖 들판에서는 농업용 드론이 벼의 생육 상태를 살피고 약제를 뿌렸다.

해 질 무렵, 배병희는 아파트 높이만 한 저온 저장 사일로 앞에 섰다.

서해에서 불어온 갯바람이 하얗게 센 귀밑머리를 스쳤다.

300만 평의 들판이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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