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면 된다"

독정리 간척지의 소금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었다.
남양호의 민물을 논배미 가득 대고 빼기를 되풀이한 지 몇 해가 지난 뒤였다.
하얗게 소금꽃이 돋던 개펄이 곡식을 기를 수 있는 논흙으로 바뀌었다.
가을이면 육만 평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었다.
보행형 수확기 바인더가 벼를 베어 묶고, 경운기에 물린 탈곡기가 볍알을 털어냈다.
타작이 끝난 마당과 곳간마다 볏가마니가 쌓였다.
배병희는 가마니 더미를 둘러보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일손을 보탠 이웃들에게 넉넉한 품삯을 치르고도 곳간이 찼다.
배병희에게는 여전히 배움에 대한 한이 남아 있었다.
가난한 살림과 먼 산길 탓에 국민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글줄이 짧아 겪은 설움을 잊을 수 없었다.
"내 자식들한테만큼은 배우지 못한 설움을 물려주지 않는다."
배병희는 땅에서 번 돈을 자식들 가르치는 일에 쏟았다.
당시 독정리에는 진학할 상급 학교가 없었다.
비포장 신작로에는 시외버스도 드물어 집에서 통학하기 어려웠다.
배병희는 안면도에 살던 시절부터 큰딸과 맏아들, 둘째 아들을 수원으로 보내 공부시켰다.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주고, 다달이 방세와 연탄값을 대며 쌀가마니가 떨어지지 않게 실어 날랐다.
공납금 고지서나 참고서 대금 이야기가 나오면 미루는 법이 없었다.
저녁 밥상을 물리자마자 안방 장롱에서 간수해 둔 지폐를 꺼내 자식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마라. 너희는 글만 파고들면 된다."
집안에서는 엄한 아버지였다.
방학을 맞아 내려온 자식들에게 밥상머리 예절부터 들판의 일머리까지 가르쳤다.
어른보다 숟가락을 먼저 들거나 밥알을 흘리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 손으로 땀 흘리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태도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자라면 마당 평상에 앉혀두고 손수 가위로 깎아주었다.
우물물을 길어다 더운물을 섞고, 아이들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던 일은 큰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대청마루 한가운데 파란 날개가 달린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가을 벼를 팔아 큰마음 먹고 들여놓은 물건이었다.
그날 마루에서 장난을 치며 뛰놀던 어린아이가 발을 헛디뎠다.
아이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바람에 선풍기가 마루 바닥으로 넘어졌다.
플라스틱 날개가 갈라지며 부러진 조각이 마루 구석으로 튀었다.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깨진 선풍기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떨었다.
소리를 들은 배병희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바닥에 흩어진 파란 날개와 고개 숙인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매가 떨어질 줄 알고 두 눈을 감았다.
배병희는 말없이 다가와 날개 조각을 주워 들었다.
깨진 단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고 조각을 맞추더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치면 된다."

배병희는 헛간으로 가서 양철 공구함을 들고나왔다.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펜치와 줄칼, 가는 철사와 인두기를 꺼내 놓았다.
화덕 불에 달군 쇠인두로 갈라진 날개 틈새를 지져 붙였다.
이어서 송곳으로 양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가는 철사를 꿰어 단단히 동여맸다.
손가락에 그을음과 플라스틱 가루가 묻었다.
휘어진 모터 축의 중심을 바로잡고, 손으로 날개를 여러 번 돌려보며 뒤틀린 곳을 손보았다.
조립을 마친 배병희가 선풍기 코드를 콘센트에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모터가 돌아갔다.
철사로 꿰맨 파란 날개가 다시 돌며 바람을 내보냈다.
배병희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곁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봐라, 다시 잘 돌아가지 않느냐. 바람 시원하다."
아이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땜질 자국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찬 서리가 내리던 늦가을 깊은 밤이었다.
자리에 누웠던 어린아이가 갑자기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며 울기 시작했다.
방바닥을 뒹굴며 사지를 비틀었고, 손발은 차갑게 식어갔다.
인적 드문 간척지 마을에는 한밤중 문을 연 약방이나 병원이 없었다.
배병희는 낮 동안 육만 평 벼 베기에 매달린 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이의 신음 소리가 들리자 배병희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열이 오른 아이를 두꺼운 포대기째 안아 들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트럭 조수석에 아이를 눕히고 운전석에 올라 시동 키를 돌렸다.
디젤 엔진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
배병희는 가속 페달을 깊이 밟았다.
트럭이 가로등 하나 없는 비포장 자갈길을 달렸다.
웅덩이에 바퀴가 빠질 때마다 차체가 요동쳤다.
배병희는 숨을 몰아쉬며 덜컹거리는 운전대를 두 손으로 쥐었다.
차창 밖으로 흙먼지가 흩어졌다.
조수석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전조등이 비추는 길을 바라보았다.
읍내 병원 앞에 차가 멈추자마자 아이를 둘러업고 닫힌 문을 밀어젖혔다.
"의사 양반! 우리 애 숨 넘어갑니다! 어서 좀 봐주시오!"
잠자리에 들었던 의사가 달려 나와 응급 처치를 했다.
아이가 진료실 침대에 눕혀진 것을 보고서야 배병희는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복도 긴 의자에 주저앉았다.
문 너머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빛이 스며들 무렵 아이의 거칠던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았다.
열이 내리고 창백하던 뺨에 혈색이 돌았다.
배병희는 굳어 있던 어깨를 내렸다.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 논흙과 기름때가 스민 손바닥으로 아이의 땀 젖은 이마를 한참 쓸어주었다.

방학을 마치고 수원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큰딸을 배웅하던 일요일 해 질 녘이었다.
아내는 잘 익은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작은 옹기 단지에 눌러 담았다.
버스에서 김치 국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과 겹겹의 신문지로 동여맸다.
"가서 동생들이랑 밥 굶지 말고, 반찬 해서 꼭꼭 챙겨 먹어라."
아내가 김치 단지를 큰딸의 품에 안겨주었다.
논에서 물꼬를 살피던 배병희는 딸이 떠난다는 소리에 고무장화도 벗지 못한 채 달려왔다.
무거운 짐을 들고 신작로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딸의 뒤를 따랐다.
길가에 멈춰 서서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꼬깃꼬깃해진 지폐 몇 장을 꺼내 딸의 외투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아버지, 지난번에 주신 용돈 아직 남아 있어요."
큰딸이 손사래를 쳤지만, 배병희는 돈을 넣은 주머니 위를 손으로 눌러 막았다.
"남겨 두었다가 읽고 싶은 책 사서 보고, 객지에서 밥 거르지 마라."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 수원행 시외버스가 멈춰 섰다.
배병희는 김치 단지를 받아 들고 버스 계단에 오르는 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길도 험하고 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니, 버스 타면 흔들림 덜한 한가운데 자리에 앉거라. 차비는 잃어버리지 않게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고."

버스가 매연을 내뿜으며 신작로 고갯마루 너머로 멀어져 갔다.
배병희는 먼지가 가라앉고 버스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가에 서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고 나서야 몸을 돌려 다시 논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아이들은 자라났다.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맏아들도 독정리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마당에 선 맏아들은 아버지의 깊어진 눈가 주름과 소금기와 흙물이 밴 손을 바라보았다.
자식들이 장성하는 동안 독정리 육만 평 들판에는 해마다 벼가 익었다.
배병희는 이웃들에게 후한 인심을 베풀었고,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를 찾았다.
1983년 가을, 독정리 일대 농민들이 벼를 맡기고 쌀을 찧어 가던 유일한 정미소인 '새마을정미소'에서 소문이 흘러나왔다.
주인이 맡은 쌀을 외지에 다 팔고도 농민들에게 치러야 할 볏값을 몇 달째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논두렁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한 해 볏값을 떼이게 생긴 농민들은 밤마다 사립문 밖을 서성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