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형제가 뭉치자 ​

장부와 종자·도정·영업·주문 자료를 두고 역할을 나누는 배병희와 다섯 아들
1990년대 말 이후, 독정리

가을걷이가 끝난 정미소 마당 위로 서늘한 서해 갯바람이 몰아쳤다.

오랫동안 집안과 일터를 돌봐온 아내는 정미소가 숨을 돌릴 만해졌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안면도 갯벌에서 남양만까지 함께 일해온 사람이었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던 안채 부엌은 이제 어두웠다.

아내를 떠나보낸 뒤에도 배병희는 날이 밝기 전에 작업복을 입었고 자정이 넘도록 기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도 자정 가까이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 수매 장부와 거래처 전표들이 펼쳐져 있었다.

밤새 건조기 온도를 살피고 들어온 맏아들이 작업복 소매로 땀을 훔치다 문간에 멈춰 섰다.

건조기와 저온 사일로는 갖추었으나, 밀려드는 벼를 등급별로 가려내고 찧어 파는 일은 두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손으로 장부를 쓰고 도매상들과 외상 거래를 하면서 늘어나는 물량을 관리하기도 버거웠다.

책상 건너편에는 아버지가 홀로 앉아 돋보기를 고쳐 쓰며 전표를 넘기고 있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맏아들은 동생들을 차례로 불러 모았다.

"아버지께 저 큰 정미소를 계속 맡겨둘 수는 없다."

"이제 우리 형제들이 함께해야 한다."

1999년 늦가을, 서울의 대기업에서 영업을 하던 둘째 아들이 가장 먼저 독정리로 내려왔다.

둘째 아들은 정미소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큰형 앞에 섰다.

"아버지, 회사에 사표 내고 내려왔습니다."

"오늘부터 제가 정미소 영업과 살림을 함께 맡겠습니다."

스패너를 쥐고 있던 배병희가 목장갑을 벗으며 둘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은 큰 회사 잘 다니던 놈이, 이 시골 정미소에는 뭣 하러 내려오느냐."

둘째 아들이 대답했다.

"아버지와 큰형이 좋은 쌀을 찧어내도 판로가 없으면 또 중간 상인들 어음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가서 수도권 유통망을 제대로 뚫어보겠습니다."


1톤 화물차로 찾아간 식당 앞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은 맨밥을 시식하게 하는 둘째 아들

이튿날부터 둘째 아들은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었다.

하지만 수도권 양곡 시장에서 새 거래처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서울 양재동과 영등포의 대형 양곡 도매상들은 화성 정미소에서 찾아온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정 거래를 트고 싶으면 외상으로 몇백 포대 먼저 깔아두고 가쇼."

"다 팔리고 나면 그때 가서 돈을 주든가 할 테니."

얼굴도 보지 않고 손을 내젓거나 헐값과 외상 거래를 요구했다.

둘째 아들은 1톤 화물차 조수석에 갓 도정한 쌀 샘플 포대와 휴대용 전기밥솥, 생수통을 싣고 다녔다.

매일 새벽 서울과 경기 일대의 대형 식당과 도매상들을 찾아다니며 콘센트를 빌려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취사 버튼이 올라가고 뚜껑을 열면 밥 위로 구수한 김이 올랐다.

"사장님, 오늘 새벽 독정리에서 찧어 온 쌀입니다."

"맨밥으로 한 숟가락만 떠보십시오."

밥을 맛본 상인들의 표정이 풀리면 둘째 아들은 거래 조건을 밝혔다.

"저희는 당일 새벽에 도정한 최상급 쌀만 문 앞까지 직송해 드립니다."

"대신 어음이나 외상 거래는 일절 받지 않고, 전액 현금 결제로만 모시겠습니다."

아버지의 3억 원 어음 부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원칙이었다.

몇 달 동안 발품을 팔자 수도권의 큰 식당과 도매 거래처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판로가 열리기 시작하던 2000년 무렵,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농협에서 근무했던 셋째 아들도 형들의 부름을 받고 정미소로 왔다.


정미소 옆 논에서 뿌리째 뽑은 벼 포기를 살피며 기록하는 셋째 아들

셋째 아들은 흙과 볍씨를 연구했다.

"형님, 도정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원료 벼가 부실하면 좋은 쌀이 나올 수 없습니다."

셋째 아들은 새벽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고무장화를 신고 남양만 간척지 논두렁으로 나섰다.

대학에서 작물학을 배우고 농협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으나 간척지 땅에서는 새로 익혀야 할 것이 많았다.

그는 간척지 토양의 산도와 배수 상태를 구간별로 기록했다.

벼 포기를 뿌리째 뽑아 흙을 털며 뿌리 발육과 새끼치기 상태도 살폈다.

밤에는 흙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앉아 종자학과 작물생리학 서적을 읽었다.

볍씨의 발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온탕 소독기의 물 온도와 침종 시간을 수십 차례 바꾸어가며 밤샘 실험을 거듭했다.

셋째 아들은 국가 공인 종자기사 자격증을 따고 요건을 갖추어 관청에 종자업 등록을 마쳤다.

우량 종자의 자체 선별과 소독, 육묘 관리 경험은 훗날 수백 농가가 참여하는 우량 품종 계약재배와 친환경 영농조합의 바탕이 되었다.

들판에서 종자의 기틀이 잡히자, 이번에는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며 시장의 생리를 익혔던 넷째 아들이 독정리로 내려왔다.


모자 없이 도정 라인 앞에서 갓 찧은 쌀의 상태를 살피는 넷째 아들

넷째 아들은 도정과 가공 공정을 맡았다.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며 주방장과 소비자들이 밥맛 차이에 민감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기계 소리와 미분(米粉) 속에서 도정 라인을 지켰다.

현미기에서 백미기로 넘어가는 롤러가 고속으로 회전할 때, 마찰열 때문에 쌀알에 미세한 실금이 가거나 수분을 빼앗기지 않도록 롤러의 압력과 송풍량을 세심하게 조율했다.

배출구에서 백미를 받아 들고 온도와 감촉으로 수분 상태를 살폈다.

"큰형님이 15퍼센트로 말려 넘겨주신 벼이고, 셋째 형이 골라낸 알곡입니다."

"제 손에서 금이 가고 싸라기가 나오면 형님들 수고가 헛일이 됩니다."

넷째 아들이 도정을 맡으면서 포대마다 일정한 품질의 쌀이 담겼다.

막내아들도 힘을 보탰다.

가정마다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버지, 형님들, 이제는 도매시장 상인들만 바라볼 때가 아닙니다."

"서울 아파트에 사는 소비자들이 안방에서 컴퓨터로 산지 쌀을 직접 골라 주문하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 실내 사무실에서 자신을 향한 얇은 LCD 모니터로 온라인 쌀 판매를 준비하는 막내아들

막내아들은 온라인 쇼핑몰에 독정 정미소의 쌀을 입점시켰다.

갓 도정한 쌀알의 투명한 윤기가 그대로 전해지도록 직접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품종과 중량, 당일 도정 원칙과 배송 조건을 화면마다 꼼꼼하게 적어 넣었다.

살림을 맡던 큰며느리는 정미소 홈페이지를 열었다.

시아버지가 간척지 땅을 일구어 온 세월과 농민들의 일, 오 형제가 새벽마다 쌀을 찧는 모습을 글로 적어 올렸다.

얼마 뒤 사무실 프린터에서 전국 각지의 직거래 주문서가 잇달아 나왔다.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도시 소비자에게 쌀을 팔게 된 것이다.

맏아들이 총괄 관리를 맡고, 형제들과 큰며느리가 종자 연구와 생산, 건조, 가공, 도매 유통, 온라인 직거래를 나누어 맡았다.

가을 저녁, 하루 일을 마친 다섯 형제가 정미소 마당에 나란히 섰다.

배병희는 작업복 차림인 아들들의 손을 첫째부터 막내까지 차례로 쥐었다.

아들들의 손마디를 어루만지며 배병희는 눈시울을 붉혔다.

먼저 떠난 아내와 함께 키운 자식들이 아버지 곁에 서 있었다.

"혼자 가면 걸음이야 빠를지 몰라도, 함께 어깨를 맞대고 가야 끝까지 멀리 가는 법이다."

배병희의 낮고 굵은 음성이 마당을 울렸다.

"다섯 형제가 뭉쳤으니 마음이 놓인다."

독정리 들판 위로 붉은 노을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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