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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망해가는 정미소를 사다
1983년 10월, 독정리
남양만 바닷바람이 누렇게 익은 들판을 거칠게 훑고 지나갔다.
마을 안길마다 흙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벼를 베어 너는 손길로 한창 들썩여야 할 시월이었지만, 들판의 공기는 흉흉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독정리 들머리에 '새마을정미소'라는 낡은 함석 간판이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바다를 막아 일군 간척지에서 농민들이 벼를 찧는 유일한 방앗간이었다.
가을 타작이 끝나면 벼를 맡겨 양식을 빼고, 남은 쌀을 팔아 자식 학비와 겨울 땔감을 마련했다.
도정한 쌀이 팔려 나가면 방앗간에서 볏값을 쳐주는 게 오랜 관례였다.
하지만 그해 가을, 정미소 마당은 찬바람만 휑하게 돌았다.
정미소는 농민들에게 줄 볏값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밀린 볏값을 받으러 찾아온 농민들에게 주인은 핑계만 늘어놓았다.
"조금만 기다려 봐.
이번 장날만 지나면 틀림없이 쳐줄 테니."
주인은 퀭한 눈으로 꽁초만 비벼 껐다.
볏값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농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일 년 내내 허리 굽혀 거둔 벼를 고스란히 날릴 판이었다.
"저러다 야반도주라도 하면 어쩐댜?"
"서울 빚쟁이들이 기계에 딱지 붙이러 온다는 소문도 돌어."
방앗간 담벼락 뒤에서 불안한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급기야 주인이 정미소를 헐값에 내던지고 튄다는 소문까지 들판을 덮쳤다.
그날 저녁, 진흙 묻은 장화를 신은 농민 대여섯 명이 배병희의 집 사립문을 두드렸다.
마루 끝에 털썩 걸터앉은 농민들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흙 묻은 털모자를 벗어 무릎을 탁 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 서방,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염치없이 찾아왔네."
마을 어르신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새마을정미소가 문 닫게 생겼어.
저 방앗간이 넘어가면 올가을 동네 농사꾼들 다 길바닥에 나앉는 판이여."
배병희는 말없이 대접에 막걸리를 채워 건넸다.
"배 서방이 그 정미소를 인수해 주면 안 되겠는가?"
곁에 앉은 농민이 무릎을 바짝 당겨 앉으며 매달렸다.
"자네는 안면도에서 김 공장도 크게 굴려봤잖은가.
이 동네서 일꾼 품삯 한 푼 안 떼어먹고 정직하게 농사지은 사람은 자네뿐이여."
"자네가 맡아만 준다면, 온 동네 벼는 두말없이 다 자네한테 실어 나를 테니."
농민들의 애원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볏값을 떼일까 봐 애가 타는 농민들의 떨리는 손마디가 등잔불 아래서 도드라졌다.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돌아간 뒤, 안방 문이 삐걱 열렸다.
노모와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의 낯빛이 파리했다.
아내는 배병희의 맞은편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절대로 안 됩니다."
낮게 가라앉은 아내의 목소리에 서릿발이 섰다.
"남양만 갯벌에 내려와 소금기 빼내느라 우리가 흘린 피땀이 얼마입니까.
이제 겨우 벼가 뿌리를 내리고 살림이 자리 잡았는데, 또 남의 빚더미를 뒤집어쓰신단 말입니까?"
아내는 타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게다가 맏아들은 어쩌고요.
수원에서 고등학교 겨우 마치고 이제 대학 보내 공부시키려던 참 아닙니까."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미소를 맡으면 그 아이가 볏가마니 밑에서 뼈골이 빠지도록 굴러야 합니다.
먼지 구덩이에 큰애를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혼한 뒤로 아내에게 고생만 시켰다.
하지만 배병희의 가슴속에는 안면도 시절부터 품어온 오랜 셈법이 있었다.
우마차에 탈곡기를 싣고 섬 들판을 누비던 시절부터 그는 곡물의 길을 보았다.
벼를 베어 털어주는 것만으로는 평생 들판의 일꾼을 벗어나지 못한다.
벼를 직접 찧어 쌀로 내야만 농사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자식 일곱을 가르치고 가문의 뼈대를 세우려면 흙만 파서는 안 되었다.
생산과 도정, 유통을 하나로 엮는 큰길을 열어야 했다.
게다가 한 해 농사를 통째로 날리게 된 이웃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웃이 무너지면 들판도 함께 망하는 법이었다.
"내 논을 떼어 파는 한이 있어도, 이 정미소는 인수해야 하오."
배병희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농민들 볏값을 떼먹게 둘 수는 없소.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해도 방앗간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요."
그때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문간에 선 이는 수원에서 돌아와 마당에 서 있던 맏아들이었다.
교복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앳된 얼굴이었지만, 눈매는 단단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맏아들이 부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밖에서 말씀 다 들었습니다."
아내가 놀라 맏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는 상관할 것 없다.
너는 공부해서 수원이나 서울로 대학 가야지."
맏아들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 대학 안 가겠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멎은 듯 굳었다.
"수원에서 학교 다니는 내내 들판에서 홀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송구했습니다.
동생들도 줄줄이 자라고 있습니다.
장남인 제가 아버지 곁을 지켜야 합니다."
맏아들은 배병희의 굳은살 박인 손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 지게 짐, 이제 제가 나누어 지겠습니다.
정미소 일, 제가 돕겠습니다."
배병희는 말없이 맏아들을 응시했다.
책을 쥐어야 할 손으로 거친 볏가마니를 날라야 할 아들의 등이 무겁게 다가왔다.
"정미소는 거친 일이다.
온몸에 겨를 뒤집어쓰고 밤을 새워야 한다.
후회 없겠느냐."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일 배우겠습니다."
맏아들의 목소리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배병희는 손을 뻗어 맏아들의 어깨를 묵직하게 쥐었다.
거친 시대를 버텨낼 부자의 맹세가 침묵 속에 맞물렸다.
아내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이튿날 배병희는 인수 준비에 나섰다.
소금기를 빼내며 옥토로 일군 6만 평 논 가운데 일부를 떼어 팔아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농민들의 밀린 볏값도 책임지기로 하고 인수 도장을 찍었다.
1983년 10월 무렵이었다.
배병희와 맏아들은 낡은 국방색 작업복을 나란히 걸쳐 입고 정미소로 향했다.
배병희는 먼지 쌓인 작업대 앞에 멈추어 섰다.
기름때 묻은 면장갑을 고쳐 낀 맏아들이 아버지 곁으로 다가섰다.
폐허 같은 방앗간 안에서, 부자는 멈춰 선 거대한 쇠붙이를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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