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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고치면 된다"
1980년대 초, 화성 독정리와 수원
독정리 간척지의 염해가 차츰 줄어들었다.
남양호 민물을 대고 빼기를 거듭한 지 몇 해가 지난 뒤였다.
소금 서걱거리던 개펄이 기름진 논흙으로 바뀌었다.
가을 들판 6만 평이 일제히 누렇게 일렁였다.
바인더가 벼를 베어 묶고 탈곡기가 낟알을 털었다.
마당과 곳간마다 볏가마니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배병희는 마당의 가마니를 둘러보며 땀을 훔쳤다.
일꾼들에게 넉넉한 품삯을 내주고도 곳간은 든든했다.
안면도를 등지며 다졌던 결심이 손에 잡히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는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었다.
배움에 대한 오랜 한이었다.
가난과 험한 물길 탓에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배움이 짧아 겪은 설움은 평생 가슴을 짓눌렀다.
면사무소 장부를 마주할 때마다 말문이 턱 막혔다.
"내 자식들한테는 죽어도 배우지 못한 설움을 물려주지 않는다."
배병희는 농사로 번 돈을 아낌없이 자식들 공부에 쏟아부었다.
당시 독정리에는 상급 학교가 없었다.
비포장 신작로에 버스도 드물어 통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배병희는 안면도에 살 때부터 큰딸과 맏아들, 둘째 아들을 수원으로 보내 공부시켰다.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주고, 방세와 연탄값을 빠짐없이 대고 쌀도 떨어지지 않게 댔다.
공납금 통지서나 책값 얘기가 나오면 하루도 미루지 않았다.
밥상을 물리자마자 장롱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 손에 쥐여주었다.
"돈 걱정일랑 손톱만큼도 하지 마라.
너희는 글만 파고들면 된다."
집안에서 배병희는 서릿발 같은 아버지였다.
방학에 내려온 자식들에게 밥상머리 버릇부터 들판 일머리까지 매섭게 가르쳤다.
숟가락을 먼저 들거나 낟알을 흘리면 불호령이 떨어졌고, 땀 흘리지 않고 거저 얻으려는 태도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한 낯빛 뒤에는 투박한 정이 깊게 깔려 있었다.
아이들 머리가 자라면 마당 평상에 앉혀두고 손수 가위로 가지런히 깎아 주었다.
우물물을 길어 머리를 감겨주던 손길은 큰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불볕더위가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대청마루에는 파란 날개가 달린 선풍기가 놓여 있었다.
벼를 모아 겨우 들여놓은 집안의 보물단지였다.
그날 마루에서 장난을 치던 아이가 발을 헛디뎠다.
선풍기가 마루청으로 고꾸라졌다.
플라스틱 날개가 쩍 갈라지며 깨진 조각이 마루 구석으로 튕겨 나갔다.
순간 집 안의 숨소리마저 딱 멎었다.
아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귀한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무릎을 꿇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기척을 느낀 배병희가 방에서 나왔다.
동강 난 날개와 겁에 질린 아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배병희는 흩어진 날개 조각을 주워 들었다.
날카로운 단면을 거친 손끝으로 훑었다.
그러고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툭 던졌다.
"고치면 된다."
호통도 매질도 없었다.
무심한 듯 담담한 한마디였다.
배병희는 헛간에서 양철 공구함을 들고 왔다.
평상에 걸터앉아 펜치, 줄칼, 철사, 인두기를 꺼냈다.
화덕에서 달군 쇠인두로 깨진 틈을 지져 붙였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가는 철사를 꿰어 단단히 엮었다.
손가락 굳은살 사이로 쇳가루와 그을음이 묻어났다.
모터 축을 다듬고 날개를 돌려보며 미세한 틀어짐을 잡았다.
조립을 마친 선풍기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모터가 돌았다.
땜질 자국 선명한 파란 날개가 시원한 바람을 뿜어냈다.
배병희는 땀을 훔치며 굳어 있던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됐다.
바람 시원하다."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삼켰다.
손을 대 정성을 들이면 무엇이든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몸은 늘 생각보다 빨랐다.
늦가을 깊은 밤, 아이가 불덩이 같은 열과 복통으로 자지러졌다.
아이는 끙끙 앓으며 사지를 비틀었다.
손발은 차게 식어갔다.
외딴 시골 마을에 야간 약방이 있을 리 없었다.
낮 동안 벼 베기로 파김치가 되어 자던 배병희였다.
그는 신음 소리에 용수철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파하는 아이를 이불째 안아 들고 마당으로 내달렸다.
트럭 조수석에 아이를 뉘고 시동을 걸었다.
디젤 엔진이 굉음을 터뜨렸다.
배병희는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비포장 신작로로 트럭이 질주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자갈길이었다.
바퀴가 웅덩이에 처박힐 때마다 차체가 요동쳤다.
배병희는 이를 악물고 운전대를 틀어쥐었다.
차창 밖으로 흙먼지가 소용돌이쳤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지만 그의 시선은 전조등 불빛 끝에만 꽂혀 있었다.
병원에 닿자마자 그는 아이를 들쳐업고 문을 밀쳤다.
"의사 양반!
애 숨이 넘어갑니다, 좀 봐주시오!"
의사가 달려와 아이를 눕히고 치료했다.
배병희는 흙투성이 차림으로 복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동녘이 밝아올 무렵 아이의 호흡이 고르게 잦아들었다.
열이 내리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배병희는 그제야 굳었던 어깨를 내렸다.
거친 손으로 아이의 땀 젖은 이마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수원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큰딸의 배웅길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해 질 녘이면 아내는 부엌에서 깍두기와 김치를 옹기 단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
국물이 샐까 봐 비닐과 신문지로 서너 겹 단단히 쌌다.
"동생들이랑 밥 굶지 말고 꼭꼭 챙겨 먹어라."
아내가 묵직한 김치 단지를 큰딸에게 안겼다.
논에서 물꼬를 보던 배병희는 흙 묻은 장화 차림으로 달려왔다.
정류장으로 걸어 나가는 딸의 뒤를 바짝 따랐다.
흙먼지 이는 길가에 서서 배병희는 바지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었다.
땀에 절은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딸의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아버지, 저번에 주신 돈 아직 남았어요."
딸이 손사래를 쳤지만 배병희는 돈을 넣어준 주머니를 꾹 눌렀다.
"남겨 뒀다 책 사서 보고, 밥 거르지 마라."
흙먼지를 일으키며 수원행 시외버스가 멈춰 섰다.
배병희는 버스에 오르는 딸의 옷자락을 잡고 낮게 당부했다.
"덜컹거리는 길에서 다칠라, 버스 타면 꼭 한가운데 자리에 앉거라.
그리고 차비는 주머니 깊숙이 잘 넣어 두고."
혹여 다칠까 걱정되어 건네는 속 깊은 당부였다.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신작로 너머로 멀어져 갔다.
배병희는 먼지가 가라앉고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묵묵히 논둑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다.
아버지의 땀방울을 먹고 자식들은 반듯하게 자라났다.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맏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부쩍 굽은 아버지의 등과 굳은살 박인 손이 마음에 걸렸다.
자식들이 장성하는 동안 독정리 6만 평 들판은 해마다 황금빛 풍년을 안겨주었다.
배병희는 이웃들에게 늘 넉넉한 인심을 베풀었고,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그를 가장 먼저 찾았다.
그러나 풍요로운 들판 너머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독정리 유일의 방앗간인 '새마을정미소'에서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았다.
주인이 쌀을 외지에 팔아넘기고도 농민들에게 줄 볏값을 몇 달째 미루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피땀 흘려 거둔 한 해 벼 값을 떼이게 된 농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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