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일을 돌아보다
2020년 2월 11일, 배병희는 독정RPC에서 자신이 걸어온 여든 해 남짓한 삶을 차분히 돌아보는 면담 자리에 앉았다. 1936년 안면도 중장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전쟁, 간척지 개척과 정미소 경영의 세월을 온몸으로 건너온 여든 중반 노농(老農)의 얼굴에는 깊은 세월의 흔적이 서려 있었다.
오랜 노동 끝에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가족과 함께 지내며, 자신이 반평생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일터가 다음 세대와 손자 세대로 이어져 든든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1983년 가을 고장 난 기계를 고치며 시작했던 작은 정미소가 대를 이어 뿌리내린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대견하고 흐뭇했다.
긴 삶을 돌아볼 때 가슴 한편에 남은 단 하나의 아쉬움은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다섯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집안의 농사를 거들며 교실 대신 논밭으로 나가야 했던 기억은 평생 그를 낮추게 했고, 주변에서 마을 이장이나 노인회장 같은 자리를 권할 때에도 한발 물러서서 오직 농사와 정미소 일에만 묵묵히 전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평생 흙과 곡식, 그리고 사람을 속이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배병희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농사를 짓고 정미소를 일구는 그 삶을 다시 택할 것이라 담담히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