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운영을 이어 가고 일을 넘기다
2004년 무렵,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배병희는 정미소 현장을 지키며 운영을 계속 이어 갔다. 원료벼를 거두어들이고 도정해 판매하기까지 공정이 세분화되고 규모가 커진 뒤에도, 그의 하루는 여전히 정미소 마당과 들판을 오가는 부지런한 걸음으로 채워졌다.
당시 국내 미곡 시장의 여건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해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전국 미곡종합처리장 사이의 경쟁은 한층 거세졌고, 정부에서도 시설 확충 자금과 해마다 벼를 사들일 수매 운영자금 지원을 경영평가에 연결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번듯한 건물과 기계를 갖춘 뒤에도 끊임없이 좋은 원료벼를 확보하고 판로를 넓혀 운영자금을 마련해야만 일터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그 변화의 파고 속에서도 배병희는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간다는 ‘일진월보(日進月步)’의 자세로 현장을 살폈다. 젊은 날 안면도 개펄에서 시작해 독정리 간척지와 정미소에서 평생 다져 온 성실함과 농민들과의 두터운 신의가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수십 년 동안 논과 정미소를 오가며 쉼 없이 달려온 배병희는 2013년 말에서 2015년 무렵,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침내 일선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낡은 정미소를 맡아 평생 어루만지고 일구어 온 그의 일터는, 오랜 세월 곁에서 함께 땀 흘려 온 장남을 비롯한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걸음을 계속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