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바뀌기 전에

한겨울에도 안면도 중장리 앞바다는 활기가 넘쳤다.
건조장 덕장에서 마른 김은 백 장씩 톳으로 묶어 궤짝에 담아 육지행 트럭에 실었다.
“이러다간 우리 중장리 사람들 전부 기와집 올리겠구먼.”
보릿고개를 벗어난 어촌계원들은 배병희의 집 마당을 자주 찾아왔다.
광천 장터에 나가 김발을 엮을 대나무를 한 배만 더 들여와 달라고 청했다.
배병희는 쉽게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는 저녁마다 평상에 앉아 공장과 어촌계의 장부를 넘겼다.
자재비와 일꾼들의 품삯을 맞추어 적고, 남은 돈은 안방 구석 사과 궤짝에 넣어 두었다.
광천 장터를 오가는 사공들이 소식을 전해 왔다.
“서울의 큰 건설회사가 천수만 북쪽에 들어왔답니다.”
“바다를 통째로 막아 논을 만든다더군요.”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귀담아듣지 않았다.
거센 바다를 사람 손으로 어떻게 막느냐며 실없는 소리로 넘겼다.
하지만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북쪽 갯골 어귀에 날마다 지프차가 드나들고, 외지 기술자들이 삼각대를 세워 조수간만을 잰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배병희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열다섯부터 지게를 지고 산과 갯벌을 누볐고, 열여덟에는 작은 목선으로 천수만을 건너다녔다.
그는 물살이 잦아드는 조금 물때를 골라 이른 새벽 작은 목선을 띄웠다.
홀로 노를 저어 천수만 북쪽, 홍성과 서산의 갯벌이 마주 보는 물목으로 배를 몰았다.
물목을 돌아 북쪽 갯가에 이르렀다.

잿빛 개흙 위에 붉고 노란 측량 깃발이 꽂혀 있었다.
방한복 차림의 외지인들이 삼각대를 세워 물길의 높낮이를 재고 있었고, 갯골을 따라서는 굵은 쇠말뚝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배병희는 갯가에 배를 대고 진뻘을 밟으며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 지금 무얼 하는 거요?”
도면을 펼쳐 들고 있던 현장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간척 사업 측량입니다.”
“저기 서산 쪽 뭍에서 이쪽까지 방조제를 놓아 천수만 북쪽에 수천만 평 농토를 만듭니다.”
기사가 가리키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배병희는 입을 다물었다.
지게로 돌과 흙가마니를 나르던 동네 둑막이와는 달랐다.
중장비와 바윗덩이로 천수만 물목을 막는 공사였다.

섬으로 돌아온 배병희는 그날 저녁 어촌계원들을 포구 창고로 불러 모았다.
“북쪽 물목에 대기업 측량패가 쇠말뚝을 박고 있더군. 바다 한가운데에 큰 둑이 올라갈 모양이오.”
소란스럽던 창고 안이 조용해졌다.
배병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북쪽 물목에 둑이 들어서면 바닷물이 드나드는 길부터 달라질 겁니다. 물살이 약해지면 지주식 김 양식도 예전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추이를 봅시다.”
창고 안이 술렁거렸다.
나이 지긋한 어촌계원이 고개를 저었다.
“계장님, 저 험한 천수만 물목을 사람 손으로 어떻게 막는단 말이오.”
“바윗덩이를 부어봐야 조류에 다 씻겨 내려가고 말 거요.”
젊은 계원들도 거들었다.
“공사를 벌인다 해도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지금 김 한 톳이 쌀 한 말 값인데, 말뚝을 하나라도 더 박아야지요.”
“맞습니다, 계장님.”
“서울 상인들이 현금을 들고 찾아오는데, 아직 돌 한 덩이 안 부은 둑 때문에 생업을 줄일 수는 없잖습니까.”
배병희는 계원들을 바라보다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창고를 나온 배병희는 홀로 썰물이 빠지는 갯골로 걸어 나갔다.
그는 물가에 쪼그려 앉아 빠져나가는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물살이 손가락 사이를 세차게 밀고 지나갔다.
안면도 지주식 김이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천수만의 거센 물살이 한몫했다.
하루 두 번 조류가 갯벌을 씻어내며 새 거름기를 실어 날라야 김 포자가 숨을 쉬었다.
썰물 때 물 밖으로 드러나 찬 바람과 볕을 쬐어야 파래 같은 잡풀이 마르고 김 결이 고와졌다.
북쪽 물목이 막혀 조류가 느려지면, 갯벌 바닥에는 뻘물이 고이고 김발에는 잡풀이 엉겨 붙을 터였다.
그때도 지금 같은 김을 거둘 수 있을지 배병희는 장담할 수 없었다.
김이 붉게 물러지고 흉작이 든 뒤에는 늦을 것 같았다.
그때는 공장과 건조장 덕장, 갯벌에 박은 수천 개의 참나무 말뚝도 제값을 받기 어려울 터였다.
아버지와 함께 사흘 밤낮 가마솥 불을 지펴 소금을 굽던 시절이 떠올랐다.
장터 시세와 장작값의 셈이 어긋났는데도 쏟은 품이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다가 빚을 졌다.
스물셋부터 스무 해 가까이 일군 바다였다.
동지섣달 손마디가 터지도록 얼음물 속에서 말뚝을 박던 날들이 떠올랐다.
배병희는 갯바람 속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물길이 바뀌기 전에 김을 접어야 한다.”
배병희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부엌 아궁이 앞에서 저녁을 안치던 아내가 마당으로 나왔다.

배병희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붙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 공장과 갯벌 일을 정리할 생각이오.”
아내는 들고 있던 젖은 행주를 고쳐 쥐었다.
한밤중 갯벌에서 돌아온 남편의 얼어붙은 손을 더운물로 녹여주던 아내였다.
“당신이 깊이 헤아려 내린 뜻일 텐데, 생각하신 대로 하세요.”
배병희는 이튿날부터 김 공장과 양식장의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수할 사람이 곧바로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비와 자재 수량을 점검했다.
해 질 녘, 썰물이 빠진 바다로 배병희는 홀로 걸어 나갔다.
갯벌 위로 겨울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줄 맞춰 늘어선 수천 개의 참나무 말뚝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나무 발들이 갯바람에 서걱거렸다.
배병희는 뻘 깊숙이 박힌 참나무 말뚝 하나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젊은 날 뒷산에서 참나무를 베어 도끼로 다듬고 나무 메로 박았던 말뚝이었다.
나뭇결 위로 굴 껍데기와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갈라진 손바닥에 소금기와 거친 나뭇결이 닿았다.
마을 어귀에서는 밤샘 작업을 앞두고 백열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상인들의 웃음소리와 김 궤짝을 싣는 트럭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배병희는 말뚝에서 손을 떼고 천수만 너머 육지를 바라보았다.
육지로 나가 기계로 큰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배병희는 개펄을 밟고 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