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바다를 접다 ​

김 톳과 궤짝을 챙기는 일꾼들을 바라보는 배병희
1976년~1977년 초, 안면도 중장리

건조장 덕장에 널린 김발 사이로 바닷바람이 불었다.

대살에 붙어 마른 김에서 갯내가 풍겼다.

일꾼들은 마른 김을 걷어 백 장씩 톳을 지었다.

창고 안쪽에는 육지로 나갈 김 궤짝들이 천장 밑까지 쌓여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서는 채취선에서 실어 낸 생김을 씻는 펌프가 물보라를 뿜어냈다.

스물셋에 낡은 김 공장을 인수한 지도 스무 해 가까이 흘렀다.

참나무 말뚝을 박아 기른 지주식 김은 윤기와 향이 좋아 서울과 인천의 도매상들까지 현금을 들고 찾아왔다.

방구석 궤짝에 돈이 쌓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셈과 일머리를 믿고 어촌계장을 맡겼다.

하지만 배병희의 시선은 자꾸만 천수만 북쪽 수평선으로 향했다.

홍성과 서산 물목에 꽂혀 있던 측량 깃발이 떠올랐다.

방조제가 들어서 물길이 바뀌면 지금처럼 김 농사를 짓기 어려울 터였다.


면사무소 게시판에서 남양만 간척 농지 입주자 모집 공고를 읽는 배병희

그즈음 면사무소에 볼일을 보러 간 배병희가 게시판 앞에서 멈춰 섰다.

회벽에 붙인 공고문 끝이 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경기도 화성 남양만 간척 농지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정부 공고였다.

1973년 겨울에 이천 미터가 넘는 방조제를 완공한 뒤, 수년간 바닷물을 빼내며 일군 땅에 농사꾼들을 들인다는 소식이었다.

배병희는 공고문에 적힌 글자와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갔다.

가구당 분양 농지 칠 정보, 이만 일천 평.

안면도에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둑을 막아 일군 삼천 평 논의 일곱 배였다.

집으로 돌아온 배병희는 저물녘까지 빈 건조장 덕장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기름칠한 세척기 철판과 손때 묻은 덕장 기둥을 쓸어내렸다.

스무 해 가까이 일한 공장이고 마흔두 해를 살아온 고향이었다.

배병희는 모터 몸체를 짚은 채 한참 눈을 감았다.

제값을 받고 넘기려면 지금 정리해야 했다.

배병희는 육지를 오가는 도매상들에게 김 공장과 양식장을 넘기겠다는 뜻을 전했다.

며칠 뒤 보령과 광천의 큰손들이 연락선을 타고 중장리 포구로 들어왔다.

공장 마당에 들어선 매수자가 세척기 둘레를 기웃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배 사장, 지금 한철에 떨어지는 현금이 얼만데 이 알짜배기를 내놓소?"

"육지에 급히 메워야 할 빚이라도 생겼소?"

상인은 배병희의 기색을 살폈다.

"빚은 없소."

배병희는 마루 끝에 놓인 두꺼운 거래 장부를 펼쳐 보였다.

"공장 건물과 대지, 건조장 덕장을 통째로 넘기는 조건이오. 세척기와 건조 모터는 지난가을에 베어링과 벨트를 새로 갈아 끼웠소. 갯벌에 박은 참나무 말뚝과 대나무 발도 손볼 곳이 없고, 내년 봄까지 나가는 서울 도매상 납품처도 그대로 인계하겠소."

배병희는 설비의 수명과 하루 마른 김 생산량, 장터 시세를 짚어 나갔다.

젊은 날 천일염과 자염으로 손해를 본 뒤로는 셈을 꼼꼼히 따졌다.

"물길이 살아 있고 안면도 김이 잘 팔릴 때 넘기는 것이오. 에누리는 없으니, 제값을 치를 생각이 없거든 돌아가시오."


매매 계약을 마친 뒤 김 공장 열쇠 꾸러미와 거래처 장부를 넘기는 배병희

매수자는 창고 안의 김 궤짝과 세척기 벨트를 손으로 눌러보더니 더는 흠을 잡지 못했다.

마루 위에 매매 계약서가 펼쳐졌다.

배병희는 계약서 도장란 앞에 인감도장을 가져다 대었다.

스물셋 겨울, 살얼음 낀 개펄에 첫 말뚝을 박던 날이 떠올랐다.

배병희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도장을 눌렀다.

현금 가방이 마루 위로 건네졌다.

배병희는 창고 열쇠 꾸러미와 거래처 장부를 상인에게 넘겨주었다.

공장을 제값에 팔아 새 땅으로 갈 밑천을 마련했다.


밤 안방에서 남양만 이주 계획을 가족에게 설명하는 배병희

그날 밤, 배병희는 안방에 호롱불을 밝히고 어머니와 두 형님을 불러 모았다.

문갑 위에는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남양만 간척 농지 분양 신청서와 공장을 넘기고 받은 돈가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내는 숭늉 그릇을 쟁반에 받쳐 내어놓고 문간 쪽에 앉았다.

어머니가 손으로 무릎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병희야, 네 나이가 벌써 마흔둘이다."

"열다섯부터 지게 지고 이제 겨우 살 만해졌는데, 어째서 이 터전을 팔고 타향으로 가겠다는 게냐."

곁에 앉은 맏형과 둘째 형도 고개를 저었다.

맏형이 무릎을 당겨 앉으며 말렸다.

"천수만을 막는다고 쳐도 몇 년은 더 김을 뜰 수 있을 텐데, 굳이 낯선 간척지로 들어가 흙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까닭이 뭐냐."

"네 몸 상할까 봐 하는 말이다."

배병희는 한동안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어머니, 형님들, 둑이 들어서고 김 농사가 꺾인 뒤에는 공장도 설비도 제값을 못 받습니다. 지금 정리해야 새 땅에서도 밑천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방바닥에 접혀 있던 경기도 화성군 지도를 넓게 펼쳤다.

"남양만은 정부가 이미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놓은 넓은 평야입니다. 우리도 옛 방조제 터를 막아 삼천 평 논에서 벼를 거둬보지 않았습니까. 간척지에서 소금기를 어떻게 빼고 언제 벼를 심어야 하는지는 해봐서 압니다."

배병희는 문갑 위의 분양 신청서와 돈가방을 가리켰다.

"정부에서 분양하는 땅이 칠 정보, 이만 일천 평입니다. 공장 정리한 밑천으로 경매와 입찰에 나온 땅을 열세 정보 더 사들이면 모두 이십 정보, 육만 평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경운기 넣고 바인더 돌려 농사를 짓고, 훗날 그 벼를 도정할 정미소까지 세울 겁니다."

배병희는 문간에 앉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잠들어 있었고, 큰아이들은 수원에 나가 공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때문입니다. 수원과 서울이 가까운 육지로 나가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습니다."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소년 시절부터 집안 생계를 꾸렸던 막내였다.

어머니와 형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어머니의 빈 숭늉 대접에 따뜻한 물을 채웠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손을 뻗어 배병희의 손등을 덮었다.

"자식들 앞길 열자고 세운 뜻이 정 그렇다면 가야지."

"어미는 널 믿는다."

맏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형은 말없이 동생의 어깨를 짚었다.

"형들도 힘을 보태야지."

"신청서에 도장 찍어라."

배병희는 인주 함을 열어 분양 신청서에 인감도장을 눌렀다.

이튿날 새벽, 배병희는 날이 밝기도 전에 헛간 문을 열었다.

안면도 들판을 누비던 10마력 경운기와 바인더, 탈곡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는 기름 묻은 헝겊으로 엔진 몸체의 흙먼지를 닦고, 옮겨 가는 길에 탈이 나지 않도록 풀린 볼트를 스패너로 조였다.


아침 바닷가 언덕에서 홀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고민하는 배병희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기름때 묻은 손을 닦은 배병희는 마을 뒤 바닷가 언덕에 올라섰다.

썰물이 빠진 갯벌 위로 수천 개의 참나무 말뚝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젊은 날 손마디가 터져 피를 흘리며 박은 말뚝들이었다.

배병희는 소금기와 기름때가 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스무 해 가까이 도끼와 노채를 쥐고 스패너를 돌리던 손이었다.

그때 언덕 아래 골목 어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장리 배 계장이 김 공장을 통째로 넘기고 육지로 아주 뜬단다!"

"화성 남양만 간척지로 식구들을 죄다 데리고 떠난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민들과 논밭으로 나가던 이웃들이 일손을 놓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배병희의 집 사립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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