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농사로 이어진 성장기 ​

해방이 된 뒤에도 안면도에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병희는 여전히 부모 곁을 지키며 봄이면 감자와 고구마를 심고 여름이면 논물을 돌보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으로 자라났다. 흙먼지 날리는 밭일과 물기 머금은 논일은 다루는 연장도, 거두어들이는 계절의 호흡도 달랐으나 그의 두 손은 어느 일 하나 가리지 않고 익숙하게 해냈다.

1946년 11월에는 바다 건너 태안읍에 태안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광복 전만 해도 아예 지역 밖으로 떠나야만 가능했던 중등교육의 길이 가까이에 열린 셈이었지만, 집안의 농사를 떠받쳐야 했던 배병희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배병희는 열다섯 살의 소년이었다. 위로 있던 형들이 집을 떠나면서 노부모를 모시고 집안의 농사를 책임지는 일은 오롯이 막내인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초여름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유월이면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마당으로 져 나르고 홀로 도리깨를 잡아야 했다.

도리깨는 긴 나무 자루 끝에 회전하는 꼭지를 달고 그 끝에 단단한 나뭇가지 여러 개를 묶어 만든 연장이다. 두 팔에 힘을 실어 자루를 머리 위로 휘두르면 끝에 매달린 가지들이 빙그르르 돌아가며 마당에 펼쳐 놓은 마른 보리 이삭을 매섭게 후려쳤다. 알곡이 이삭에서 온전히 떨어져 나올 때까지 수천 번이고 거듭 내리쳐야만 했다. 땀에 젖은 목덜미로 날카로운 보리 까끄라기가 파고들어 살갗이 따갑게 짓무르고 손바닥이 부르터도, 장마가 들이닥치기 전에 타작을 끝내려면 팔을 멈출 수 없었다. 가을에 거둔 벼 역시 베어 내어 볕에 말린 뒤 이삭에서 낟알을 털어 내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힘겹게 타작을 마친 곡식 더미에는 아직 빈 쭉정이와 부서진 검불, 고운 흙먼지가 가득 섞여 있었다. 곡식을 넓적한 키에 담아 두 손으로 리듬감 있게 까부르면, 바람을 타고 가벼운 검불은 허공으로 흩어지거나 키 앞쪽으로 밀려났고 묵직하게 여문 알곡만 뒤쪽으로 알뜰히 모였다. 수없이 허리와 팔을 놀려 낟알을 털고 바람에 까불러 내고서야 비로소 식구들의 입에 들어갈 온전한 양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겨울과 봄까지 상하지 않게 두고 먹으려면 햇볕과 바람에 바짝 말리는 갈무리가 뒤따라야 했다. 이삭을 털기 전에 볏단째 한 차례 말리고, 털어 낸 낟알도 마당에 넓게 펴서 다시 말렸다. 볏짚으로 두툼하게 엮은 멍석이나 둥근 도래방석 위에 알곡을 고루 펼쳐 놓고, 나무 고무래로 수시로 밀고 당기며 낟알 속의 습기를 날려 보냈다.

그렇게 가을 볕을 머금어 잘 마른 곡식은 독과 뒤주, 그리고 짚으로 짠 섬과 가마니에 차곡차곡 채워졌다. 짚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가마니는 작은 낟알 하나 새어 나가지 않을 만큼 단단해 곡식을 담아 높이 쌓아 두기에 좋았고, 비워진 뒤에는 납작하게 접어 갈무리해 두었다. 아무리 살림이 빠듯해도 이듬해 봄에 다시 땅에 묻을 씨종자만큼은 먹을 곡식과 엄격히 나누어 씨주머니나 바가지로 만든 뒤웅박에 담아 소중히 보관했다.

청년 시절의 배병희는 날마다 등판에서 지게가 떠날 날이 없었다. 자연스레 가지가 벌어진 소나무 두 개를 골라 가로대를 끼우고 짚으로 등받침과 멜빵을 엮어 만든 지게는, 밭에 뿌릴 두엄과 소 먹일 풀, 가을의 볏단과 겨울 아궁이에 지필 땔나무까지 온갖 짐을 등으로 옮기는 가장 요긴한 발이었다. 수레가 다니기 힘든 좁고 가파른 섬마을의 비탈길에서도 지게 하나만 등에 얹으면 못 나를 짐이 없었다. 다만 아직 뼈가 다 자라지 않은 시절부터 제 몸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개를 넘나들다 보니, 거친 짚 멜빵이 어깨를 짓눌러 피멍이 들고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1950년대의 농촌은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맨몸과 소의 힘이 농사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씨를 뿌리고, 풀을 매고, 낫으로 베고, 도리깨로 털고, 지게로 져 나르는 모든 고비마다 배병희의 굵은 땀방울과 고단한 손길이 바쳐졌다.

전쟁이 끝난 1953년 5월, 마침내 안면도 안에도 안면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가 태어난 이듬해 마을에 초등학교가 들어서고 청년의 문턱에 이르러 섬 안에 중학교까지 생겨났지만, 배병희에게 학교는 끝내 인연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오가는 길목 옆에서 그는 묵묵히 지게를 지고 흙을 일구며 스무 살의 고개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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