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김 일과 새 식구들
스물세 살 무렵, 배병희는 부모와 함께 짓던 논밭 농사에 더해 겨울 바다로 삶의 영역을 넓혔다. 예부터 안면도에서는 김을 ‘해태’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는데, 넓게 발달한 갯벌에 나무 기둥을 박아 김을 기르는 지주식 양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젊은 배병희는 농한기인 겨울철에도 손 놓고 쉬는 대신 차가운 갯벌에서 새로운 살길을 찾았다.
지주식 양식은 얕은 바닷가 진흙 바닥에 굵은 말뚝을 줄지어 박고 그 사이에 대나무로 엮은 김발을 매다는 방식이었다. 바다 위에 부표를 띄워 발을 늘여 놓는 방식과 달리, 바닥에 단단히 뿌리박은 말뚝이 거센 물살 속에서도 김발을 억세게 붙들어 주었다. 하루 두 차례 밀물이 차오르면 김발은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겨 영양분을 머금었고, 썰물이 빠져나가면 허공으로 모습을 드러내 바닷바람과 햇볕을 쬐었다.
김발이 물 밖으로 드러나 마르는 그 시간조차 양식에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김보다 건조에 약한 파래나 잡티 같은 다른 부착생물들이 볕과 바람에 말라 떨어져 나가면서 오히려 김이 깨끗하게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논농사가 사람의 손으로 물꼬를 트고 막으며 물을 다스리는 일이라면, 바다의 김 농사는 달과 조류가 정해 주는 물때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어야 하는 일이었다.
김은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에 얇은 잎 모양으로 자라나는 해조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땅 위에서 곡식을 기르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갯벌로 나가 김을 거두는 생활이 맞물리면서 배병희의 일 년은 뭍의 농사철과 바다의 김 철이 쉼 없이 이어지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시린 겨울 갯벌에서 뜯어 온 생김은 바닷물을 잔뜩 머금어 묵직하고 미끄러웠다. 이를 반듯한 마른 김으로 만들어 내다 팔려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 못지않게 고된 뭍의 손질이 뒤따라야 했다. 차가운 물에 김을 여러 번 일구어 갯벌의 티끌을 씻어 내고, 도마 위에서 잘게 썬 뒤 다시 깨끗한 물에 풀어 한 장씩 틀에 떠 내어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전통적인 손뜨기 작업에서는 잘게 쪼갠 대나무로 엮은 건조발 위에 바닥이 뚫린 네모난 나무틀을 얹었다. 물에 고루 풀어 둔 김을 떠서 틀 안에 부으면, 물기는 대나무 발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고 네모난 틀 안쪽에 검푸른 김만 얇고 고르게 남았다.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여린 김이 찢어지지 않도록 건조발이 그대로 받침대가 되어 주었고, 양지바른 건조장에서 바닷바람과 겨울 햇살에 바짝 마른 뒤에야 비로소 발에서 한 장씩 조심스레 떼어 낼 수 있었다. 바다에서 김을 키우는 발과 마당에서 김을 말리는 발은 쓰임새도 자리도 달랐으나, 둘 다 배병희의 정성스러운 손끝이 닿아야만 비로소 제 구실을 했다.
애써 말려 놓은 김도 습기를 다시 머금으면 금세 눅눅해지고 빛깔이 바래 제값을 받을 수 없었다. 바다에서 많이 거두어들이는 것만큼이나, 맑은 날 제때 말리고 습기가 스미지 않게 갈무리하는 일이 중요했다. 양식과 채취에서부터 세척과 손뜨기, 건조와 판매에 이르기까지 겨울 한 철 내내 그의 손에는 바닷물 마를 날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 무렵, 배병희는 혼인을 해 자신의 가정을 꾸렸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해 오던 막내아들에게 평생의 고생을 함께 나눌 반려자가 생긴 것이다.
결혼 뒤 슬하에 아들 다섯과 딸 둘, 일곱 남매를 두면서 그가 짊어진 가장의 무게도 한층 묵직해졌다. 식구가 늘어날수록 배병희는 한층 더 억척스럽게 땅과 바다를 오갔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찬 서리가 내릴 때면 온 식구와 함께 시린 손을 불며 겨울 김을 씻고 말리는 일에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