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독정리로 옮기다
1970년대 후반, 마흔을 넘긴 배병희는 마침내 사십여 년 동안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고향 안면도를 떠나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로 터전을 옮겼다. 천수만 일대의 환경 변화로 앞날의 김 양식이 예전 같지 않으리라는 판단과, 수원에서 공부하는 자녀들과 더 가까운 육지에서 넓은 농토를 일구어 보려는 결심이 맞물린 결정이었다. 반평생 땀 흘려 일군 고향의 기반을 뒤로하고 낯선 타향으로 나서는 중년의 발걸음에는 묵직한 각오가 실려 있었다.
그가 새로 찾아든 남양만 일대에는 발안천 하구를 가로막은 거대한 남양방조제가 이미 완공되어 있었다. 길게 뻗은 둑 안쪽으로는 농업용수를 가득 가두어 둔 담수호 남양호가 출렁였고, 한때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은 바닥을 고르고 수로와 배수로, 반듯한 농로를 내는 공사를 거쳐 1976년 드넓은 바둑판 모양의 논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배병희는 바다를 막아 새로 탄생한 그 개척의 땅에 자신의 후반생을 심기로 했다.
남양간척사업으로 조성된 열네 곳의 이주민 정착촌에는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섞여 살았다. 독정리 역시 서로 다른 고향에서 온 이웃들이 모여 삽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간척 마을이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안면도의 삶을 칼로 무 자르듯 접은 것은 아니었다. 배병희는 화성 독정리에 먼저 농지를 마련한 뒤에도 한동안 안면도와 화성을 오가며 두 곳의 농사를 함께 지었다. 고향에 일을 돕는 사람을 두고 양쪽의 들판을 부지런히 오가며, 살림과 농기구, 가족의 생활 기반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옮겨 왔다.
독정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배병희는 살 집과 함께 농사지을 땅을 넓게 확보했다. 처음 마련한 농지에 그치지 않고 고향의 사업을 정리한 밑천을 보태 인근의 논을 추가로 사들이며 대농(大農)의 기틀을 다졌다. 안면도의 구릉 사이에서 논밭을 일구던 농부가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의 농부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간척지 농사는 물길과 길을 다스리는 일에서 시작됐다. 남양호에 모인 민물이 양수장과 수로를 따라 논으로 흘러들었고, 장마철이나 물갈이 때 논에 지나치게 고인 물은 배수로를 통해 제때 빠져나가야 했다. 반듯하게 닦인 농로는 들판 깊은 곳의 논과 마을을 하나로 이어 주었다. 고향 안면도와 같은 서해 바닷가였지만, 겨울 바다의 김발 대신 지평선까지 펼쳐진 넓은 논이 이제 배병희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이 되었다.
정든 고향 집의 살림살이는 트럭에 실려 육지 길을 달려왔다. 안면도에서 쓰던 손때 묻은 세간들이 독정리의 새 거처로 옮겨지면서, 두 지역을 오가던 고단한 생활도 마무리되고 그의 삶의 중심이 화성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사한 뒤에도 학업 때문에 먼저 수원에 거처를 두고 학교에 다니던 자녀들과 독정리 집에서 생활하는 가족의 거처는 나뉘어 있었으나, 배병희는 어느 곳의 자식도 부족함이 없도록 뒷바라지하며 새 땅의 들판으로 나섰다.
그는 새로 일군 독정리의 넓은 논에서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경작하는 논이 수만 평에 이를 만큼 넓어지면서 가족의 손길만으로는 일손을 다 채우기 어려웠고, 새 땅에서의 농사는 자연스레 마을 이웃들과 힘을 모으는 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