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새마을정미소를 맡다 ​

독정리에서 몇 해 동안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으며 이웃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자, 마을 농민들이 배병희를 찾아와 ‘새마을정미소’ 인수를 권했다. 당시 마을의 정미소가 농민들이 맡긴 볏값을 제때 치르지 못해 원성이 쌓이던 터라, 고향에서 사업도 해 보고 셈과 신의가 분명한 그가 정미소를 맡아 주기를 바란 것이다.

집안에서는 아내가 강하게 반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논농사로 뼈가 휠 지경인데 정미소까지 떠맡으면 고생이 끝도 없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배병희 역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깊이 고심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힘을 보태겠다는 이웃 농민들의 간곡한 지지와, 노모를 모시고 일곱 남매를 뒷바라지하려면 농사만 짓기보다 정미소 사업을 함께 일구는 편이 낫겠다는 결단이 끝내 그의 마음을 굳히게 했다.

1983년 가을 무렵, 배병희는 마을 농민들의 지지 속에 새마을정미소를 인수했다. 이미 새마을정미소라는 간판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직접 지은 곡식에 더해 이웃 농가들이 한 해 동안 땀 흘려 거둔 벼까지 받아 하얀 쌀로 도정하는 정미소 주인이 되었다. 학업을 마친 장남도 출퇴근하는 방위병 복무 여건 속에서 남는 시간마다 아버지의 일터로 나와 무거운 일손을 함께 거들었다.

막상 문을 열고 맡아 본 정미소는 손볼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모든 설비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기에, 배병희는 밀려드는 가을 곡식을 받아 가공하면서 당장 급하고 고장 난 곳부터 기름때 묻은 손으로 하나씩 고쳐 썼다.

당시 농촌 정미소는 발동기나 엔진이 묵직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면, 그 회전력을 긴 쇠축과 바퀴, 넓적한 벨트로 도정기에 전달하는 구조였다. 곡식을 찧는 기계와 동력을 내는 설비가 팽팽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옛 절구나 방아로 곡식을 찧던 고된 노동을 덜어 주었지만, 그만큼 기계의 진동과 벨트의 상태를 늘 날카롭게 살펴야 했다.

도정은 거친 벼가 껍질을 벗고 정갈한 흰쌀로 거듭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벼의 거친 왕겨를 벗기면 현미가 되고, 현미의 얇은 쌀겨층을 한 번 더 깎아 내면 비로소 흰쌀이 쏟아져 나왔다. 왕겨와 쌀겨가 빠져나가는 만큼 벼 한 포대를 넣는다고 해서 같은 무게의 흰쌀 한 포대가 나오지는 않았다.

더구나 낟알에 가하는 압력과 깎아 내는 정도, 한꺼번에 부어 넣는 곡식의 양과 기계를 거치는 횟수에 따라 쌀의 상태가 예민하게 달라졌다. 무리하게 깎거나 압력을 잘못 맞추면 부서진 쌀이 늘어났고, 덜 깎으면 제 빛깔이 나지 않았다. 배병희는 뽀얀 쌀먼지가 내려앉는 기계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쌀알을 손바닥에 받아 살피며, 덜 깎인 쌀이나 깨진 쌀이 늘지 않도록 곡식의 건조 상태와 기계의 숨소리를 끊임없이 조율했다.

정미소를 맡은 뒤에도 배병희는 자신의 뿌리인 논농사를 놓지 않았다. 가을 수확을 마친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급한 겨울 도정 일을 처리하며 잠시 숨을 골랐고, 봄기운이 도는 3월부터 7월 사이에는 낡은 정미소 시설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봄에 정미소를 손볼 때면 이미 들판의 농사도 시작되어 가을까지 이어졌으니, 배병희는 논에서 땀 흘려 거둔 돈을 고스란히 정미소의 기계와 건물을 고치는 데 쏟아부으며 일터를 키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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