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정미소 일과 집안의 끼니
인수 뒤 여러 해에 걸쳐 배병희가 가장 마음을 쏟은 일은 정미소의 보관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창고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는 정미소 가까운 이웃의 빈 논을 빌려 벼 가마니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방수포를 덮어 야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들판에 내놓은 벼는 밤이면 들쥐들의 피해를 입기 일쑤였고, 비라도 내리면 방수포 틈으로 습기가 스며들어 애써 거둔 곡식이 상하곤 했다.
벼는 단단한 겉껍질이 감싸고 있어도 수분이 많은 채로 오래 쌓아 두면 열이 나고 변질되기 쉬웠다. 보관하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상태가 금세 달라지고 미생물과 해충의 피해도 생길 수 있었기에, 수확한 곡식을 쌀로 찧어 내보낼 때까지 온전하게 지켜 둘 반듯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다고 벼를 너무 빠르게 말리거나 높은 온도로 무리하게 말릴 수도 없었다. 급하게 열을 가하면 낟알의 겉과 속에 수분 차이가 생겨 미세한 금이 갔고, 이는 도정할 때 깨진 쌀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보관할 수 있을 만큼 알맞게 말리면서도 낟알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지켜 내야만 좋은 쌀을 얻을 수 있었다.
도정한 쌀이 당장 팔리지 않아도 농가에서 사들인 볏값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던 배병희는, 곡식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결국 야적장으로 빌려 쓰던 이웃의 논을 사서 번듯한 창고를 지었다. 창고가 들어선 뒤에는 무거운 볏짐을 실어 나를 길이 필요해, 대형 트랙터와 화물트럭이 수월하게 오갈 수 있도록 진입로까지 넓고 단단하게 닦았다.
가공 설비를 다듬는 데에도 배병희의 돈과 땀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하나를 마련하면 다른 하나가 모자라고 이쪽을 고치면 저쪽에서 말썽이 일던 시절, 그는 전기 시설을 교체하고 낡은 도정기를 손보았으며 부족한 장비를 새로 장만해 가며 정미소의 뼈대를 탄탄하게 다졌다.
정미소 마당이 곡식 실은 차들로 붐빌 때면, 배병희는 정미소를 찾은 손님들에게 집에서 따뜻한 밥을 챙겨 대접하게 했다. "사람은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그의 평소 신조대로, 곡식을 맡기거나 찾아오는 이웃들을 늘 넉넉한 인심으로 맞았다.
1990년 장남이 결혼해 새 식구가 들어온 뒤로는 큰며느리가 정미소 일꾼들의 식사를 도맡아 챙겼다. 그해 운전면허를 딴 큰며느리가 배병희의 세렉스 트럭을 몰고 논으로 일꾼들의 들밥을 나를 때면, 배병희는 흐뭇한 얼굴로 조수석에 나란히 타고 갔다. 예전 같으면 머리에 무겁게 이고 날랐을 새참을 며느리가 손수 트럭을 몰아 나르는 것이 못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 그는, 논길에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마다 차를 세우게 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