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거래 대금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1990년대, 정미소를 일구어 오던 배병희에게 사업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만한 큰 시련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믿고 쌀을 거래하던 상회에서 쌀값을 받지 못하면서 약 3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다. 내보낸 쌀의 대금이 돌아오지 않자 정미소를 계속 운영하는 데 엄청난 부담이 덮쳤고, 무엇보다 그동안 믿고 거래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과 허탈함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당시 정미소 거래에는 농가의 벼를 찧어 주고 도정 삯만 받는 방식과, 정미소가 벼를 직접 사들여 쌀로 가공해 파는 방식이 있었다. 벼를 직접 사들여 파는 쪽은 가공과 보관의 책임에 더해 판매 대금까지 온전히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쌀을 가져간 상회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정미소에 벼를 맡긴 이웃 농가들에 치러야 할 볏값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벼를 직접 사들여 파는 거래에서는 먼저 돈을 내고 원료곡을 확보한 뒤 소비지에서 쌀값을 받기까지 늘 시간이 걸렸다. 거래처가 외상이나 어음으로 결제를 미루면 그동안 자금이 꽁꽁 묶였지만, 다음 벼를 사들일 자금과 가공·보관·운반 비용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정미소 창고에 곡식이 쌓여 있어도 당장 농민들에게 건넬 수 있는 현금과는 전혀 달랐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배병희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자신의 철칙을 지켰다. 그는 쌀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해 자금이 막혔을 때에도 평생 피땀 흘려 일군 자신의 논을 팔아 농가의 볏값을 밀리지 않고 치렀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눈앞의 위기 때문에 이웃 농민들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결단이, 농사꾼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땅을 내놓게 한 것이다.
처음 독정리에 자리 잡았을 때 넓게 펼쳐져 있던 그의 농지가 세월이 흐르며 크게 줄어든 과정에는, 이처럼 거래 손실 속에서도 농가의 볏값을 치르기 위해 땅을 내놓은 일과 앞서 여러 해 동안 창고와 길, 도정 설비를 확충하느라 농지를 처분해 시설 자금으로 쏟아부은 일이 함께 놓여 있었다. 시설에 들인 돈과 거래처에서 받지 못한 돈은 서로 다른 부담이었으나, 배병희는 그때마다 자신의 땅을 떼어 내어 정미소와 사람의 믿음을 함께 지켜 냈다.
큰 손실을 겪은 뒤에도 배병희는 주저앉지 않고 다시 정미소 기계를 돌렸다. 어떤 풍파 속에서도 약속을 지킨 그를 믿고 마을 농민들이 변함없이 벼를 맡겨 주었기에, 그는 흔들림 없이 일터를 지키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