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일을 나누고 판로를 넓히다 ​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며 배병희가 억척스럽게 지켜 온 정미소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일의 체계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미소 안에서 쌀을 찧어 내는 ‘생산·가공’ 영역과 그 쌀을 시장에 내다 파는 ‘영업·판매’ 영역을 나누어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미소 안쪽에서 원료벼의 품질과 도정 작업을 꼼꼼히 살피는 동안, 판매 쪽에서는 정성껏 찧은 쌀이 제값을 받고 팔려 나갈 판로를 넓혀야 했다. 당시 산지의 도정업체와 미곡종합처리장들은 도매상과 도시의 쌀가게, 대형 판매점 등을 상대로 치열하게 거래처를 넓혀 가던 시기였다. 좋은 벼를 거두어 깨끗하게 찧는 일 못지않게, 믿을 수 있는 거래처를 찾아 안정적으로 쌀을 공급하는 힘이 정미소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0년 무렵에는 지역 농가들과 정미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계약재배에도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다. 주변에서 아직 생소하게 여기던 고품질 벼 품종인 ‘추청(아끼바레)’과 ‘고시히카리’를 지역 농가들이 재배할 수 있도록 연계하며 원료곡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계약재배는 봄철 씨앗을 뿌리기 전의 품종 선택과 가을 수확 뒤의 매입을 하나로 이어 주는 약속이었다. 정미소는 밥맛 좋은 우량 품종의 벼를 계획적으로 모을 수 있었고, 농가는 수확한 벼를 안정적으로 내보낼 곳과 연결되었다. 배병희가 직접 경작하던 논에서 거둔 벼를 넘어, 지역 농가들의 땅과 땀방울이 정미소와 든든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부를 다루고 쌀을 알리는 방식도 달라졌다. 수기 장부 대신 컴퓨터를 활용한 전자장부로 정미소의 거래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경기도의 농업인 홈페이지 구축 사업을 통해 전자상거래용 홈페이지도 열었다. 큰며느리가 실무를 맡은 이 전산화와 온라인 거래는, 쌀을 도정하고 파는 전통적인 정미소 일에 새로운 시대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이처럼 원료곡 확보와 가공, 판로 개척과 전산화가 한데 맞물려 내실을 다진 끝에 2003년, 배병희가 운영하던 정미소는 마침내 ‘민간 자체 조성 미곡종합처리장(RPC)’ 승인을 받았다. 작은 시골 방앗간에서 출발한 새마을정미소가 ‘독정RPC’라는 이름으로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한 순간이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가을 들판에서 갓 수확해 아직 마르지 않은 ‘물벼’를 그대로 받아 건조와 저장, 도정 가공과 포장까지 한곳에서 이어 맡는 현대식 시설이었다. 농가마다 벼를 볕에 말려 포대에 담고 여러 곳으로 옮기던 고된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곡식을 찧는 기계에 더해 물벼를 받을 자리와 대형 건조·보관 시설, 쌀을 정갈하게 포장해 내보낼 설비가 함께 갖추어졌다.

읽기 설정

글자 크기

줄 간격

서체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