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열다섯에 짊어진 지게 ​

일본 홋카이도 박물관 벽에 긴 나무자루와 회전 연결부, 끝의 막대 또는 묶은 가지로 된 두 도리깨가 걸린 모습
도리깨 사진 정보100y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크기·형식·톤 조정

해방이 된 뒤에도 안면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병희는 여전히 부모 곁을 지키며 봄이면 감자와 고구마를 심고 여름이면 논물을 돌보면서 소년으로 자라났다. 흙먼지 날리는 밭일과 물기 머금은 논일은 쓰는 연장도 달랐고 거두는 철도 달랐지만, 그는 어느 일 하나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해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배병희는 열다섯 살이었다. 집안의 기둥이던 형들이 전쟁터로 떠나면서,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집안 농사를 짓는 일은 고스란히 막내인 그의 몫이 되었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전장으로 형들을 떠나보낸 기억은 어린 동생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배병희는 바로 위 형의 군번을 잊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형들의 빈자리를 홀로 메워야 했던 그 시절, 초여름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유월이면 그는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마당으로 져 나르고 홀로 도리깨를 잡아야 했다.

도리깨는 긴 나무 자루 끝에 돌아가는 꼭지를 달고 단단한 나뭇가지 여러 개를 묶어 만든 연장이었다. 두 팔에 힘을 주어 자루를 머리 위로 휘두르면 끝에 매달린 가지들이 돌아가며 마당에 펼쳐 놓은 마른 보리 이삭을 세차게 내리쳤다. 알곡이 이삭에서 다 떨어져 나올 때까지 수천 번이고 되풀이해 두드려야 했다. 변변한 기계 하나 없던 전쟁 때에는 그렇게 홀로 한 달 동안이나 보리를 타작하기도 했다. 땀에 젖은 목덜미로 까끌까끌한 보리 까끄라기가 파고들어 살갗이 따갑게 짓무르고 손바닥이 부르터도, 장마가 닥치기 전에 타작을 마치려면 팔을 멈출 수 없었다. 가을에 베어 들인 벼 역시 볕에 말린 뒤 이삭에서 일일이 낟알을 털어 내야 했다.

힘겹게 타작을 마친 곡식 더미에는 빈 쭉정이와 부서진 검불, 흙먼지가 잔뜩 섞여 있었다. 곡식을 넓적한 키에 담아 두 손으로 능숙하게 까부르면, 가벼운 검불은 바람에 날려 가거나 키 앞쪽으로 밀려나고 묵직하게 여문 알곡만 안쪽으로 알뜰히 모였다. 수없이 허리와 팔을 놀려 낟알을 털고 키질을 거듭하고 나서야 식구들의 입에 들어갈 양식이 마련되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겨울과 봄까지 상하지 않게 두고 먹으려면 햇볕과 바람에 바짝 말려 갈무리해야 했다. 이삭을 털기 전에 볏단째 한 차례 말리고, 털어 낸 낟알도 마당에 넓게 펴서 다시 말렸다. 볏짚으로 두툼하게 엮은 멍석이나 둥근 도래방석 위에 알곡을 고루 펼쳐 놓고, 나무 고무래로 수시로 밀고 당기며 낟알을 골고루 말렸다.

그렇게 가을볕에 잘 마른 곡식은 독과 뒤주, 짚으로 짠 섬과 가마니에 차곡차곡 담았다. 짚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가마니는 작은 낟알 하나 새어 나가지 않을 만큼 튼튼해 곡식을 담아 높이 쌓아 두기에 좋았고, 다 비운 뒤에는 납작하게 접어 두었다. 살림이 아무리 빠듯해도 이듬해 봄에 심을 종자만큼은 먹을 곡식과 따로 갈라 씨주머니나 바가지로 만든 뒤웅박에 담아 소중히 간수했다.


굵은 나무 기둥 두 개와 가로대, 짚 등받침과 멜빵으로 구성한 지게가 벽 앞에 놓인 모습
지게 사진 정보국립국어원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KR · 크기·형식·톤 조정

소년 시절 배병희의 등에서는 지게가 떠날 날이 없었다. 알맞게 가지가 벌어진 소나무 두 개에 가로대를 끼우고 짚으로 등받침과 멜빵을 엮어 만든 지게는, 밭에 뿌릴 두엄과 소 먹일 풀, 가을 볏단과 겨울 아궁이에 지필 땔나무까지 온갖 짐을 실어 나르는 가장 요긴한 도구였다. 수레가 다니기 힘든 섬마을의 좁고 가파른 비탈길에서도 지게 하나만 지면 못 나를 짐이 없었다. 다만 아직 뼈가 다 여물지 않은 나이부터 제 몸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개를 넘나들다 보니, 거친 짚 멜빵에 눌린 어깨에는 피멍이 가시지 않았고 이내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1950년대 농촌에서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맨몸과 소의 힘에 기대어 농사를 지었다. 씨를 뿌리고, 풀을 매고, 낫으로 베고, 도리깨로 털어 지게로 져 나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배병희의 땀과 손길이 스며 있었다.

그러나 섬의 좁은 논밭에서 거두는 곡식만으로는 빠듯한 살림을 꾸려 가기가 늘 버거웠기에, 배병희는 농사 밖에서도 살림에 보탤 일을 찾아 나섰다. 한번은 안면도의 나무를 배에 싣고 바다 건너 광천 방면으로 팔러 가다 거친 물길에서 조난을 당한 적도 있었다. 홀로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던 중 사나운 풍랑을 만나 큰 위험에 빠졌으나, 천신만고 끝에 섬(죽도) 근처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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