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고향 섬을 떠나 간척지 들판으로 ​

반듯한 농로와 논둑을 따라 황금빛 벼가 너르게 펼쳐진 들녘
황금빛 들녘 사진 정보강화군 농정과 제공 · 촬영자 성명 미표기 · 교동도 황금들판 — 농업인 삶의 질 향상 보도자료 (2018.3.7) · KOGL Type 1 · 크기·형식·톤 조정 · 교동도 들녘 참고사진 · 남양간척지 아님

1977년, 마흔을 넘긴 배병희는 태어나 줄곧 살아온 고향 안면도를 떠나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로 터전을 옮겼다. 천수만 일대의 환경이 바뀌면서 김 양식이 예전 같지 않으리라 내다본 데다, 수원에서 공부하는 자녀들과 가까운 육지에서 넓은 농토를 일구어 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반평생 땀 흘려 다진 고향의 기반을 뒤로하고 낯선 땅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가 새로 자리 잡은 남양만 일대에는 발안천 하구를 막은 남양방조제가 이미 들어서 있었다. 길게 뻗은 방조제 안쪽으로는 농업용수를 가두어 둔 남양호가 자리 잡았고, 한때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은 바닥을 고르고 물길과 농로를 내는 공사를 거쳐 1976년 바둑판처럼 반듯한 논으로 바뀌어 있었다. 배병희는 바다를 메워 만든 이 간척지 들판에서 새로 농사를 시작했다.

남양간척사업으로 들어선 열네 곳의 정착촌에는 전국 각지에서 새 터전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다. 독정리 역시 고향이 저마다 다른 이웃들이 모여 함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독정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배병희는 먼저 정부 분양으로 18평 주택과 7정보의 농지를 마련했다. 여기에 고향의 일을 정리한 밑천을 보태 입찰이 아닌 일반 매매로 인근 논 13정보를 더 사들이면서, 그가 일굴 농지는 모두 20정보, 약 6만 평에 이르렀다. 안면도의 나지막한 구릉 사이에서 논밭을 부치던 그가 드넓은 간척지 평야에서 대농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안면도의 일을 하루아침에 모두 접은 것은 아니었다. 배병희는 화성 독정리에 농지를 마련한 뒤에도 한동안 안면도와 화성을 오가며 두 곳의 농사를 함께 지었다. 고향에는 일을 거드는 사람을 두고 양쪽 들판을 부지런히 살피면서, 살림살이와 농기구를 차근차근 육지로 옮겨 왔다.

간척지에서는 수로와 농로가 농사를 뒷받침했다. 남양호에 모인 민물이 양수장과 수로를 따라 논으로 흘러들었고, 장마철이나 물갈이 때 논에 지나치게 고인 물은 배수로를 따라 빠져나갔다. 반듯하게 닦인 농로는 들판 깊은 곳의 논과 마을을 이어 주었다. 고향 안면도와 같은 서해 바닷가였지만, 이곳에서는 겨울 바다의 김발 대신 지평선까지 펼쳐진 넓은 논이 배병희의 삶을 떠받치는 중심이 되었다.


일본 전시장에 놓인 붉고 흰색의 보행형 바인더와 벼를 모아 베는 앞쪽 장치
바인더 사진 정보PekePO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크기·형식·톤 조정

정든 고향집의 살림살이도 트럭에 실어 육지로 모두 옮겨 왔다. 독정리의 첫 집은 방이 셋이고 아궁이도 셋이 딸린 구조였다. 안면도에서 쓰던 손때 묻은 세간을 그 새집에 들여놓으면서, 두 지역을 오가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화성에 완전히 정착했다.

이사한 뒤에도 학업 때문에 먼저 수원에서 학교에 다니던 자녀들과 독정리 집에서 지내는 식구들은 떨어져 살았지만, 배병희는 양쪽 자식들을 살뜰히 뒷바라지하며 새 들판으로 나섰다.

낯선 땅에서 시작하는 생활이었으나 고향의 인연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배병희가 터전을 옮길 때 안면도에서 함께 건너온 이웃도 여섯 가구가 있어, 새 들판에서 농사를 시작하면서도 고향에서 맺은 든든한 이웃 관계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독정리의 넓은 논에서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부치는 논이 워낙 넓어지다 보니 식구들의 힘만으로는 일손이 달려, 새 땅에서 짓는 농사는 자연스레 마을 이웃들과 힘을 모으는 일로 이어졌다.

논농사와 더불어 안면도에서 하던 탈곡 일도 독정리에서 계속 이어 갔다. 가을이면 벼를 베고 볏단을 묶어 주는 바인더를 혼자 몰며 추수를 서둘렀고, 경운기에 탈곡기를 연결해 이웃 농가의 타작 일을 맡으며 논농사 외의 수입도 부지런히 보탰다. 다만 기계가 벼를 베고 알곡을 털어 주더라도, 묶인 볏단을 나르고 탈곡기에 쉬지 않고 대 주는 일에는 여전히 여러 사람의 손발이 함께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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