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땅을 일구며 얻은 신망 ​

손바닥 위에 수확한 벼를 올려 살펴보는 실제 원본 사진
손 위의 여문 벼 사진 정보사용자 제공 · 게재 허락 · 크기·형식 변환 · 후대 농사 참고사진 · 인물 미상

독정리에 뿌리를 내린 배병희는 해가 뜨기가 무섭게 논으로 나가 해가 질 때까지 흙과 씨름하며 농사에 매달렸다. 봄 모내기와 가을 추수철처럼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때에는 일꾼을 여럿 얻어야만 넓은 논일을 제때 마칠 수 있었다.

배병희는 품앗이로 이웃들과 일손을 주고받기도 하고, 일손이 모자랄 때에는 품삯을 주고 사람을 썼다. 각지에서 모여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빠르게 신망을 얻은 것은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마음과 후한 품값 덕분이었다. 그는 함께 땀 흘리는 일꾼들의 끼니와 새참을 늘 푸짐하게 챙겼고, 쌀로 품삯을 줄 때에도 되를 깎지 않고 넉넉하게 담아 주었다. 농사일 밖에서 이웃이 도움을 청할 때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 동네 사람의 차가 도랑에 빠지면 기꺼이 나서서 건져 주곤 했다.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 논은 내륙의 일반 논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보살펴야 했다. 방조제로 바닷물을 막았다 해도 흙 속 깊이 배어 있는 소금기가 단번에 빠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벼의 뿌리가 독한 소금기에 상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염분을 다스려야 이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흙 속의 소금기를 빼내려면 민물을 넉넉히 대어 염분을 녹여 낸 뒤 배수로로 흘려보내야 했다. 물이 들어오는 길과 빠져나가는 길이 모두 막힘없이 트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땅이 바짝 마르면 땅속의 염분이 수분을 타고 다시 흙 위로 올라와 하얗게 소금기가 맺히곤 했다. 논에 채워 두는 물은 벼 뿌리에 수분을 대 주는 동시에 흙의 소금기를 묽게 낮추고 염분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 주었다.

배병희가 이주하기 직전인 1976년에도 남양간척지에서는 배수 방법에 따라 염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험하기도 했다. 배수시설을 둔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의 결과가 달랐던 만큼, 이미 반듯하게 정리된 논이라도 날마다 논둑을 돌며 물빛과 흙 상태를 살피고 부지런히 물꼬를 봐주어야 온전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었다.


장작과 마른 풀을 옆에 쌓아 둔 아궁이 위에 뚜껑을 덮은 검은 가마솥이 놓인 모습
아궁이와 가마솥 사진 정보© revi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KR · 크기·형식·톤 조정

새 땅에 자리 잡은 초기에는 집안 살림과 들일에도 식구들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내와 딸이 산에 가서 떨어진 마른 솔잎을 큰 자루에 담아 오면 경운기나 트럭으로 실어 날라다 아궁이에 불을 땠고, 모내기와 추수 사이에는 자녀들도 논에 나가 피와 잡초를 뽑고 가을 들판의 새 떼를 쫓으며 다 여문 곡식을 지켰다.

이처럼 온 식구가 고단하게 살림을 일구던 시절이었지만, 배병희는 집 안의 일에 너그러운 가장이기도 했다. 한번은 자녀가 집에서 실수로 선풍기 날개를 망가뜨렸을 때에도, 그는 나무라기보다 고쳐 쓰면 된다며 담담하게 아이의 마음을 다독였다.

정미소를 시작하기 전까지 독정리 집에는 배병희의 노모도 함께 살았다. 아내는 넓은 들일과 살림을 꾸리면서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고, 막내아들이자 가장인 배병희는 노모와 대식구의 생계를 짊어진 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간척지 들판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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