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정미소에서 미곡종합처리장으로

독정RPC 사진 정보
사용자 제공 · 게재 허락 · 크기·형식 변환 · 2016년 방문 자료 · 촬영일 미상 · 현재 모습과 다를 수 있음1990년대 말로 접어들며 배병희가 이끌던 정미소는 일하는 방식을 새로 가다듬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정미소 안에서 쌀을 찧는 일과 그 쌀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나누어 한결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안에서 원료벼의 품질과 도정 작업을 꼼꼼히 살피는 동안, 밖에서는 정성껏 찧은 쌀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판로를 넓혀야 했다. 당시 산지의 도정 업체와 미곡종합처리장들은 도매상과 도시의 쌀가게, 대형 판매점 등을 상대로 치열하게 거래처를 넓혀 가고 있었다. 좋은 벼를 거두어 깨끗하게 찧는 일 못지않게, 믿을 만한 거래처를 찾아 쌀을 꾸준히 대는 일이 정미소가 커 가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고시히카리 벼 사진 정보
Siriusplo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크기·형식·톤 조정치열해진 쌀 시장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밥맛 좋은 쌀을 안정적으로 내놓아야 했다. 이를 위해 2000년 무렵에는 지역 농가들과 손을 잡고 계약재배에도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다. 주변에서 아직 낯설어하던 고품질 벼 품종인 ‘고시히카리’와 ‘백진주’를 농가들이 심도록 이끌면서 원료벼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계약재배는 봄에 씨를 뿌리기 전 심을 품종을 정하는 일부터 가을에 거둔 벼를 사들이는 일까지 하나로 잇는 약속이었다. 정미소는 밥맛 좋은 우량 품종의 벼를 계획성 있게 확보할 수 있었고, 농가는 수확한 벼를 마음 놓고 넘길 판로를 얻었다. 배병희가 직접 부치던 논에서 거둔 벼에 더해, 이웃 농가들이 가꾼 벼까지 정미소로 모이면서 일터가 한층 활기를 띠었다.

CRT 컴퓨터 사진 정보
Adityamadhav83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크기·형식·톤 조정세상이 달라지면서 장부를 정리하고 쌀을 알리는 방식도 바뀌었다. 손으로 쓰던 장부 대신 컴퓨터로 거래 내역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경기도의 농업인 홈페이지 구축 사업을 통해 인터넷으로 쌀을 사고파는 홈페이지도 열었다. 쌀을 찧어 내다 팔던 전통 정미소에 컴퓨터 장부와 온라인 판매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차근차근 내실을 다진 끝에, 2003년 배병희가 운영하던 정미소는 ‘민간 자체 조성 미곡종합처리장(RPC)’ 승인을 받았다. 작은 시골 정미소로 출발한 일터가 ‘독정RPC’라는 이름을 달고 어엿한 현대식 시설로 발돋움한 순간이었다.
미곡종합처리장은 가을 들판에서 갓 거두어 아직 마르지 않은 ‘물벼’를 그대로 받아 건조와 보관, 도정과 포장까지 한곳에서 도맡아 처리하는 시설이었다. 농가마다 벼를 볕에 말려 포대에 담고 여기저기 실어 나르던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도정기뿐 아니라 물벼를 받는 시설과 대형 건조·보관 설비, 쌀을 깨끗하게 포장해 내보내는 장치까지 두루 갖추었다. 발동기 벨트를 손수 조이고 들판에 쌓은 볏가마니 옆에서 밤잠을 설치던 옛 시골 정미소가, 오랜 세월 부단히 땀을 쏟은 끝에 지역의 쌀 생산과 유통을 아우르는 든든한 일터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