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찾아온 날 ​

1970년대 안면도 하늘색 ㄷ자 집에서 어린 작은딸을 뒤로하고 일터로 나서는 배병희
안면도와 독정리, 자녀들의 회고

자식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배병희는 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집 안에서는 엄했고, 다정한 말을 자주 건네는 성정도 아니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작업복을 입고 나서면 들판과 정미소에는 늘 할 일이 많았고, 쉬는 날이 없었다.

어린 작은딸에게 부모의 일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려가는 곳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집 안은 늘 조용했다.

부모가 논과 정미소에 나가고 없던 빈집에서, 어린 딸은 해가 기울 때까지 마루에 앉아 부모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이따금 부모 곁에 갈 때면 일손을 보태야 했다.

어머니를 따라 뒷산에 올라가 마른 솔잎을 긁어모아 자루에 담았고, 아궁이 불을 지필 땔감을 경운기나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거들었다.

여름이면 논바닥에 들어가 피를 뽑았고, 가을 들판에서는 새 떼를 쫓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시절 어린 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늘 일에 파묻혀 멀리 서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런 아버지에게도 딸의 손길을 기다리는 순간이 있었다.

평소에는 흙과 쌀겨가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지내면서도, 바깥출입을 할 때면 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외출을 앞둔 날이면 배병희는 거울 앞에 앉아 작은딸을 불렀다.

짧게 깎은 머리였지만 딸이 빗과 드라이어를 들고 뒤에 서서 머리카락을 손질해 주면,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머리를 맡겼다.

세월이 흘러 작은딸도 자라 혼인을 하고 제 살림을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딸이 시아버지 상을 당했다.


작은딸의 시아버지 빈소에 가장 먼저 달려와 딸 곁을 묵묵히 지키는 배병희

갑작스러운 큰일에 경황없이 빈소를 지키던 딸 앞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아버지였다.

정미소와 들판의 바쁜 일을 제쳐 두고 달려온 길이었다.

배병희는 상복을 입은 딸 앞에 다가서서 거친 손으로 딸의 손을 한 번 힘주어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빈소 한편에 묵묵히 앉아 자리를 지켰다.

어릴 적 빈집에서 부모를 기다리던 딸은,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그날의 빈소를 떠올렸다.


큰딸의 기억 속에도 말없이 곁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 문턱만 밟아보고 지게를 져야 했던 배병희는, 자식들이 공부하는 일에는 아끼는 법이 없었다.

안면도에서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무명 보자기에 책을 싸서 메고 다녔다.

그 시절 배병희는 큰딸과 맏아들에게 책보 대신 ‘충무정신’이라 적힌 책가방을 마련해 들려 보냈다.

논일과 정미소 일로 바쁜 와중에도, 자식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날에는 빠지지 않고 학교를 찾았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교정에 들어서면, 운동장 한편에 서서 자식의 이름이 불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 안 밥상머리나 마루에서 마주할 때면 배병희는 자식들에게 늘 같은 당부를 남겼다.

"어디를 가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길에서 이웃을 만나면 어른이든 아이든 먼저 인사를 잘해야 하고."


막내 아들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알리려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짧은 축하 인사로 전화가 끊어지자 막내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뒤, 배병희는 일터를 뒤로하고 서울까지 아이를 보러 찾아왔다.

배병희는 굳은살 박인 손으로 갓 태어난 손주의 작은 발과 이마를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훗날 그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들은 배병희는 다시 서울 병원까지 찾아와, 아이의 뺨과 아들의 어깨를 말없이 쓸어주었다.

막내는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일곱 남매를 기르고 모두 공부시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이었는지 헤아려보게 되었다.

평생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 본 적 없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자식들의 가장 기쁜 날과 가장 아픈 날에는 늘 아버지가 먼저 찾아와 곁에 서 있었다.

읽기 설정

글자 크기

줄 간격

서체

화면

배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