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갯벌의 말뚝 ​

서릿발이 선 빈 들판 너머 중장리 앞바다
1960년대 후반, 안면도 중장리 앞바다

우마차로 들판을 누비는 탈곡패를 꾸리기 전의 일이었다.

늦가을 타작마당의 흙먼지가 가라앉자 안면도 들판에 서릿발이 소금 바늘처럼 하얗게 돋아났다.

농한기가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에 모여 긴 겨울을 났다.

화롯불에 언 손을 녹이며 짚신을 삼거나 새끼를 꼬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배병희는 방 안에 들어앉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바다를 막아 삼천 평 갯논을 일구었으나, 가마솥에 소금을 구워내다 떠안은 빚과 대식구의 끼니가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가올 봄 농사 밑천을 마련하고, 땅을 넓혀 농기계를 들여놓으려면 겨울에도 목돈이 도는 일터가 절실했다.

배병희는 마른 그루터기만 남은 빈 들판을 지나 중장리 앞바다로 걸어 나갔다.


수채화로 그린 물이 빠진 겨울 중장리 갯벌의 첫머리 풍경

안면도 남쪽 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유난히 컸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끝 간 데 없는 잿빛 개흙이 드러났다.

그 무렵 포구 어귀에 자리한 낡은 김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전 주인은 불어난 빚과 거친 바닷일을 감당하지 못해 손을 털고 뭍으로 떠난 뒤였다.

주인 잃은 마당에는 바닷바람에 녹슨 슬레이트 지붕만 덜컹거렸고, 삭아 비틀어진 건조장 덕장 아래로 김을 뜨던 나무틀이 깨진 채 뒹굴고 있었다.

"배 서방, 땅 파던 농사꾼이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어쩌려고 그러나."

공장 기둥을 살피는 배병희의 등 뒤로 마을 어르신들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소금 굽다 겪은 고생을 벌써 잊었는가. 얼어붙은 뻘밭에 섣불리 손댔다간 남은 밑천마저 다 날린다네."

이웃들의 만류에도 배병희는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마당 구석에 버려진 나무틀 하나를 집어 들어 하얗게 소금기가 말라붙은 나뭇결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전 주인이 무너진 까닭은 분명했다.

남들이 따 온 생김을 비싼 값에 사다 말리기만 해서는, 장작값과 일꾼 품삯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이문이 없었다.

수지를 맞추려면 원천부터 직접 쥐어야 했다.

갯벌 한가운데에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지주식(支柱式) 김밭을 일구어,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원료부터 온전히 내 몫으로 만들어야만 셈이 섰다.

그날 밤, 배병희는 호롱불 아래서 그동안 알뜰히 모은 돈이 든 무명 전대를 꺼내 놓았다.

전대 끈을 쥔 굵은 손마디가 팽팽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수십 번 굴려본 셈법은 분명했다.

배병희는 전대 매듭을 끌렀다.

공장을 인수한 이튿날부터 배병희는 톱과 도끼를 둘러메고 뒷산으로 올랐다.

지주식 김 양식은 거센 서해 조류와 겨울 파도를 정면으로 버텨낼 단단한 목재가 생명이었다.

그는 바닷물에 쉬 삭지 않는 아름드리 참나무만 골라 밑동을 찍어 넘겼다.

도끼날이 단단한 나뭇결을 파고들 때마다 찬 산바람 속에서도 굵은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쓰러진 참나무를 지게에 져 날라 마당에 부리고, 낫으로 거친 껍질을 벗겨 말뚝 끝을 창날처럼 뾰족하게 깎았다.

옹이진 참나무를 다듬느라 거칠어진 손바닥 살갗이 갈라져 벌건 생채기가 번졌다.

대밭에서 베어 온 대나무도 손질해야 했다.

칼로 통대를 쪼개어 가느다란 살을 만들고, 마른 짚과 노끈으로 촘촘히 엮어 김 포자가 달라붙을 발을 짰다.

갓 쪼갠 대나무 살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가락 끝이 베여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배병희는 흙 묻은 바지에 피를 쓱 문질러 닦으며 묵묵히 발을 엮어 나갔다.

가을부터 수백 개의 말뚝을 깎고 발을 짰으나, 정작 큰 고역은 겨울 갯벌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바다 물때는 사람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사위가 칠흑처럼 어두운 한밤중이든 동트기 전 새벽이든, 썰물이 빠져나가면 지체 없이 바다로 나서야 했다.

살얼음이 서걱거리는 갯벌로 첫발을 디뎠다.

목 긴 고무장화를 신었지만 뼛속까지 시린 개흙물 한기가 금세 발가락 끝을 파고들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뻘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을 억세게 물고 늘어졌다.

한 걸음 떼어놓는 데도 허리와 허벅지의 힘을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했다.

지게에 실린 참나무 말뚝과 김발이 어깨뼈를 무겁게 짓눌렀다.

긴 작대기로 어두운 뻘바닥을 짚어가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수평선 너머에서 몰아치는 북서풍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귀가 얼어붙어 감각이 사라졌고, 가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얼음 조각을 삼킨 듯 목구멍이 아렸다.


동트기 전 겨울 갯벌에서 나무 메를 양손으로 치켜들고 김발 말뚝을 박는 배병희

배병희는 물길이 지나는 뻘 한가운데에 두 발을 깊이 묻고 섰다.

묵직한 나무 메를 양손으로 번쩍 치켜올렸다.

쿵!

둔탁한 울림과 함께 참나무 말뚝이 진뻘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튀어 오른 찬 개흙물이 이마와 눈가에 닿자마자 허옇게 얼어붙었다.

말뚝을 박는 일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김발을 매는 높낮이였다.

김은 바닷물에 마냥 잠겨 있어서도 안 되고, 햇볕에 마냥 드러나서도 안 되었다.

밀물이 들면 발이 물속에 잠겨 바다의 거름기를 빨아들이고, 썰물이 지면 물 밖으로 온전히 드러나 겨울 햇볕과 바닷바람을 고루 쐬어야 했다.

발이 너무 낮으면 늘 물에 잠겨 파래 같은 잡풀이 엉겨 붙어 썩어버렸고, 너무 높으면 메마른 칼바람에 포자가 얼어 터져 말라죽었다.

배병희는 말뚝에 남은 물자국과 갯골의 물길을 날마다 눈으로 재고, 맨손으로 물살의 세기를 느끼며 높이를 잡았다.

밤바람이 거세지자 함께 들어온 마을 일꾼들의 손길이 눈에 띄게 무뎌졌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으로 매듭을 짓다 보니 김발 한쪽 끝이 물길 쪽으로 축 처져 있었다.

배병희는 말로 다그치는 대신 가장 물살이 차고 깊은 갯골 어귀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언 노끈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처진 김발을 팽팽하게 끌어올렸다.

"이쪽은 물살이 세니 한 뼘만 더 높여 매야 합니다. 썰물 때 해를 반나절은 온전히 쬐어야 파래가 마르고 김 결이 고와집니다."

배병희가 손수 시범을 보이며 매듭을 단단히 조이자, 언 손을 호호 불던 일꾼들도 다시 눈빛을 다잡고 줄을 고쳐 맸다.

얼음물에 젖은 면장갑은 금세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줄을 당길 때마다 손마디가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시린 짠물에 닿자 감각마저 무뎌졌다.

그때 저 멀리 어둠 너머에서 우르릉거리며 밀물이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병희는 일꾼들을 먼저 뭍으로 내보냈다.

물이 발목까지 차오를 때까지 남아 마지막 김발 매듭을 어금니로 물어 조인 뒤에야 뻘밭을 빠져나왔다.

자정이 훌쩍 지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소금기와 뻘물에 절어 얼어붙은 옷자락이 걸을 때마다 버석거렸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어두운 마당 건너 부엌 문틈으로 뽀얀 김과 함께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겨울 깊은 밤 아궁이에서 미꾸라지 손칼국수를 끓이는 아내

아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남편이 바다에 나간 밤이면 물때가 끝날 때까지 불씨를 죽이지 않고 기다리던 아내였다.

아내는 말없이 마루 밑으로 내려와 살갗에 달라붙은 장갑부터 조심스레 벗겨냈다.

"손부터 녹이세요."

아내가 가마솥에서 떠 온 따뜻한 물을 양은 대야에 담아 내려놓았다.

물에 손을 담그자 돌처럼 굳었던 손마디가 녹으며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배병희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숨을 삼켰다.

터진 손등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개흙이 미지근한 물속으로 번져 나갔다.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큼직한 뚝배기가 작은 밥상 위에 올랐다.

가마솥에서 푹 고아낸 미꾸라지 손칼국수였다.

지난가을 타작을 마친 뒤, 겨울철 기력을 보태려고 논둑 도랑을 뒤져 잡아 올렸던 미꾸라지였다.

아내는 그 미꾸라지를 뼈째 무르도록 삶아 체에 곱게 거르고, 묵은 된장과 고추장으로 칼칼하게 장국을 잡은 뒤 홍두깨로 직접 밀어 썬 면을 넉넉히 털어 넣었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얼음장 같던 오장육부가 스르르 풀렸다.

차지고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넘길 때마다 뻣뻣하게 굳었던 사지에 비로소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아내는 밥상 맞은편에 앉아 남편이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내일 새벽 남편이 갈아입을 마른 무명옷의 구김살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폈다.

겨울이 깊어질 무렵, 동지섣달의 매서운 북풍이 몰아쳐 갯벌을 더욱 단단하게 얼렸다.

새벽 썰물에 맞춰 다시 바다로 나간 배병희의 눈앞으로 수백 개의 참나무 말뚝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혹독한 조류를 버텨낸 대나무 발들이 반듯하게 수평을 이룬 채 팽팽하게 갯바람을 맞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른 아침 햇살이 회색빛 갯벌 위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아침 햇살에 드러난 대나무 김발의 검푸른 생김

햇살을 받은 대나무 살 위로 짙고도 선명한 묵빛이 어렸다.

매서운 칼바람과 얼음 같은 바닷물을 견뎌낸 대나무 발마다, 윤기가 흐르는 검푸른 생김이 빈틈없이 새까맣게 엉겨 붙어 있었다.

배병희는 거칠게 부르튼 손끝으로 생김 자락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보드라우면서도 차진 감촉 사이로 싱그러운 겨울 바다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파래 한 올 섞이지 않은 최상품 해태였다.

배병희는 터진 손마디로 김발의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포구 언덕 위에는 생김을 져 나를 지게와 대나무 광주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혹독한 겨울 바다 위로, 곧 온 마을 마당을 가득 메우게 될 검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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