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가구가 따라나선 길

안면도 중장리 흙마당에 마른 봄바람이 불었다.
발밑에서 볏짚 부스러기와 황토 먼지가 날렸다.
스물셋에 인수해 스무 해 가까이 일했던 김 공장은 이제 남의 손에 넘어갔다.
참나무 말뚝을 박아 일군 양식장도 넘겼다.
사립문 안쪽 담벼락 아래에는 새끼줄로 동여맨 이불 보퉁이와 크고 작은 오지항아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배병희는 마당 한편에 서서 손때 묻은 농기계들을 내려다보았다.
안면도 들판을 누비던 10마력 경운기였다.
무쇠 몸체에는 기름때와 녹이 묻어 있었다.
그 곁에는 경운기 벨트에 물려 볏단을 털어내던 탈곡기와 보행형 수확기인 바인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촌계장이 고향을 떠난다는 소문에 섬이 술렁였다.
사람들은 한창 돈을 버는 김 공장을 팔고 낯선 육지 간척지로 간다니, 배 서방이 단단히 홀렸다며 수군거렸다.
마흔두 해를 살아온 고향이었다.
하지만 물길이 바뀔 것을 내다본 이상 떠날 때를 미룰 수는 없었다.
떠날 채비를 서두르던 어느 날 저녁, 사립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뻘밭에서 함께 김발을 매고 가을 들판에서 탈곡기를 나르던 이웃 장정들이 마당에 들어섰다.

이웃들이 호롱불을 밝힌 방 안에 둘러앉았다.
"배 계장, 참말로 내일모레면 육지 간척지로 아주 떠나는 겨?"
나이 지긋한 이웃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쓸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화성 남양만으로 갑니다."
배병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웃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 무릎을 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배 계장, 실은 상의 끝에 찾아왔네."
"우리도 자네 따라나서면 안 되겠는가?"
"형님, 거긴 아무 연고도 없는 간척지입니다. 바닷물을 막은 지 얼마 안 돼서 소금기도 덜 빠졌을 텐데요."
"고생이야 이 섬에서도 평생 겪었지."
"우린 글눈도 어둡고 육지 물정도 몰러."
"하지만 자네가 멈춘 탈곡기 축을 밤새 깎아 살려내고, 품삯 한 됫박 안 속이고 사람 챙기는 걸 십수 년 동안 보지 않았는가."
곁에 앉은 젊은 가장도 손을 모아 쥐며 말을 보탰다.
"자네 말대로 천수만 물길이 막히면 우리 같은 영세 어민들은 더 버틸 재간이 없네."
"자네 따라가 함께 흙을 파면, 설령 소금밭이라도 굶지는 않겠다 싶어서 그러네."
함께 떠나겠다는 이웃은 여섯 가구였다.
대대로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조상 묘가 있는 고향을 떠나 살림을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배병희는 방바닥에 얹은 제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제 식구만 데리고 가기도 막막한 길이었다.
여섯 가구가 더 가면 일곱 집 수십 명의 생계를 함께 걱정해야 했다.
배병희는 이웃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가서 보면 여기보다 몇 갑절은 더 힘든 땅일 겁니다. 단단히 각오하셨다면, 같이 가서 물길부터 틉시다."
이웃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웃들이 돌아간 뒤, 마당으로 나온 배병희가 사립문 밖을 바라보았다.
담장 너머 감나무 아래에 누가 서 있었다.
동네 끄트머리 흙오두막에서 피붙이 없이 홀로 지내던 마을 어르신이었다.
젊어서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고, 기력이 쇠한 뒤로는 갯벌에서 굴을 까며 끼니를 이어가던 노인이었다.
어르신은 감나무 뒤에 선 채 마당에 쌓인 이삿짐 보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진 삼베옷 자락이 저녁 바람에 흔들렸다.
지팡이 삼은 나무 작대기를 짚은 채 사립문 밖에 서 있었다.
배병희는 마당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그의 살림도 빠듯했다.
여든이 가까운 노모와 아내, 아직 어린 네 남매에다 먼저 수원으로 유학 보낸 큰아이들의 학비와 하숙비까지 다달이 대야 했다.
고향에서 번 돈은 간척지 땅값으로 다 들어간 참이었다.
배병희는 어스름 속의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배병희는 마당을 가로질러 사립문 밖 감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노인이 지팡이를 고쳐 쥐며 뒷걸음질을 쳤다.
배병희는 노인의 손목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바닷물과 굴 껍데기에 거칠어진 손끝이 떨렸다.
"어르신. 우리랑 같이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노인이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닐세, 배 계장."
"이 늙은 몸이 따라가면 자네 집 살림에 짐만 될 텐데……."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지요. 어서 짐 챙겨서 같이 가시지요."
배병희는 노인의 팔을 부축해 동네 끄트머리 오두막으로 향했다.
구들장이 꺼진 방에는 세간이 몇 가지 없었다.
솜이 죽은 낡은 이불 한 채와 기운 옷가지 몇 벌,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놋숟가락 하나를 바랜 무명 보자기에 쌌다.
배병희는 보퉁이를 어깨에 메고 노인의 손을 이끌어 집 마당으로 돌아왔다.
짐을 묶던 식구들도, 소식을 듣고 나온 이웃들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부엌문 앞에 서 있던 아내는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으로 들어가 가마솥 뚜껑을 열고 따뜻한 숭늉 한 대접을 떠 와 노인의 손에 쥐여주었다.
남양만에 새 터전을 잡은 뒤에도 어르신은 배병희네와 한집에서 지낼 터였다.
떠나는 날 아침, 이삿짐을 실어 나를 대형 트럭 석 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기영차, 뒤쪽 더 밀어 올리소!"
배병희는 이웃 장정들과 함께 삼줄을 어깨에 걸고 당겼다.
두꺼운 널빤지를 타고 올라간 10마력 경운기가 첫 번째 트럭 적재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옆에 탈곡기와 바인더를 붙여 세웠다.
비포장길에서 짐이 밀리지 않도록 배병희는 밧줄을 당겨 매듭을 조였다.
일곱 집의 세간살이와 간장·된장 항아리들도 짚풀을 두껍게 덧대어 트럭에 실었다.
노인의 보퉁이는 경운기 바퀴 안쪽, 비바람과 흔들림을 덜 타는 자리에 얹었다.
배병희는 노모를 부축해 트럭 조수석 안쪽에 앉혔다.
이어서 마을 어르신의 등을 받쳐 올려 적재함 안쪽 바람막이 뒤편의 볏짚 자리에 앉혀 드렸다.

1977년 이른 봄, 안면도를 빠져나가는 황톳길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짐을 실은 트럭 세 대가 중장리 포구를 돌아 섬의 마지막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여섯 집 식구들과 어린아이들이 적재함 짚단 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트럭이 고갯마루를 넘어설 무렵, 짐칸에 탄 누군가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가래질을 하며 바다를 막아 일군 삼천 평 논과, 굴을 까고 김발을 매던 바다가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앞자리에 앉은 노모는 조새를 쥐느라 마디가 굽은 손으로 저고리 고름을 매만졌다.
조수석 창가에 앉은 배병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창 밖 소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연륙교를 건너 섬을 벗어난 뒤에도 트럭은 비포장 신작로를 온종일 달렸다.
해가 기울어 어스름이 깔릴 무렵, 트럭 세 대가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 들머리에 멈춰 섰다.
디젤 엔진 소리가 꺼지고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배병희는 철제 차 문을 밀고 가장 먼저 내려섰다.
군화 밑창 아래에서 마른 흙덩이가 부서졌다.
배병희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풀도 제대로 돋지 않은 잿빛 벌판이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서해에서 갯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갈라진 논바닥에 말라붙은 소금 가루가 먼지와 함께 날렸다.
짐칸에서 내려선 이웃들이 탄식했다.
바람에 짠 갯내가 실려 왔다.
배병희는 갈라진 논바닥에 쪼그려 앉아 흙을 한 줌 쥐었다.
손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만져졌다.
전 재산을 들여 마련한 육만 평이었다.
바닷물이 물러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땅속까지 짠물이 배어 있었다.
배병희는 손안의 흙을 움켜쥐었다가 털어냈다.
바람에 날리는 옷깃을 여미며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10마력 경운기를 실은 트럭 적재함으로 옮겨갔다.